일상 이야기

평범한 삶을 받아들임

강형구 2017. 5. 13. 20:04

 

   평화로운 주말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침에는 느긋하게 늦게까지 잠을 잤다. 요즘은 주말이 되어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저 편하게 쉬고 싶을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평범한 샐러리맨(salary man)이다. 나는 직장에서 매월 급여를 받아 가족을 건사하며 생활을 꾸려나간다. 아내는 작년 12월 초에 출산한 이후 지금까지 육아휴직 중이다. 딸은 태어난 지 만 5개월이 지났다. 나는 평범하고 소심한 아저씨이며, 평소에는 수수한 옷을 입고 다닌다. 나는 말주변이 별로 없으며, 인맥이 넓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나는 주말이 되면 아이를 보고 집을 청소하는 등의 일을 하며 집에서 쉰다. 집에서 쉴 때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을 보면서,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력과 사회인으로서 내가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비교해보았다. 대통령은 오천만 명의 국민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반면, 나는 400명 정도인 직장 내의 동료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과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사람이지만, 나와 대통령 사이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평범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비범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오래 전부터 나의 바람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한 나의 오랜 꿈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오늘 점심식사를 한 후 나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2001년에 인문대학 철학과가 아니라 법과대학 법학과로 진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2001년에 내게는 법학과로 진학할 기회가 있었다. 입시 당시 나는 하나의 대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교에는 법학과로 지원했었고, 실제로 한 대학교에서 입학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무엇 하겠는가?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에게 맞는 운명이 있었고 나는 그 운명을 따랐을 뿐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재직 중인 직장에 취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서부터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법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있다. 통장에 잔액이 남아 있어도 언제 어떤 일로 돈이 빠져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늘 말없이 나를 지지해주던 버팀목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와 같은 버팀목이 되어 나의 아이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한 명의 가장이 된 나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일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책장을 펴고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것 역시 나에게는 일종의 상징적인 활동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7일 중에 5일을 노동하고 2일을 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제도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 쉬고만 있어도 휴식은 나에게 커다란 위안을 준다. 휴식을 취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또 다시 내일을 살아갈 의욕을 얻는다.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하게 잘 해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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