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야만전사 바바리안

강형구 2017. 5. 5. 12:02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남자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키가 크고 날씬하며 무엇보다도 아주 잘생겼으며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나에 관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으며, 머리가 크고, 몸에 털이 많으며,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에 불과했다. 나는 내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기보다는 키가 아담하고 몸이 두툼하며 다소 투박하게 생긴 조연급 아저씨와 흡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누구나 자신을 어떤 다른 대상에 빗대어 생각하며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나는 스스로를 야만전사 바바리안으로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끼고 있다. 야만전사 바바리안 중에서도 키가 크고 용력이 뛰어난 영웅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그와 같은 영웅 바바리안이 아니라 다소 평범한 중간 수준의 바바리안 전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바바리안 전사는 커다란 세상 곳곳을 모험하며 다양한 적들과 싸우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나 역시 세상에서 태어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사회 속에서 살아남았다. 공식 교육과정을 거쳤고, 군대에 다녀왔으며,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약간 독특한 바바리안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가 공부와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나는 생긴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독서를 좋아하고 손으로 글을 쓰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감수성을 갖춘 바바리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공부나 음악만큼 몸을 단련하는 것 역시 좋아한다. 역기를 들어 근력 운동을 하거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야만전사 바바리안은 민족이나 나라가 위급할 때 주저 없이 전쟁터로 나간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절이 찾아오면 바바리안은 충실히 농업이나 사냥에 종사하거나, 국가 내의 다른 구성원들을 교육하는 데 힘쓴다. 나 역시 평화로운 시기에는 직장인으로서 충실하게 일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산다.

  

   드넓은 대지 위를 살아가는 한 명의 바바리안 전사, 나는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나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연약한 현대인으로서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거칠고 험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나가는 강인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화적 존재로서의 섬세하고 유약한 인간보다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인간이 더 우선한다. 남자에게는 남자로서의 생존 본능이 있으며, 여자에게는 여자로서의 생존 본능이 있다. 인간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컷들이 무리를 지키고 다른 수컷들과 혹독하게 싸움을 벌이듯, 남자들 역시 가족을 지키고 명예와 권력을 위해 다른 남자들과 혹독하게 싸움을 벌인다. 다만 나는 영웅과 같은 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위대하지는 않지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바바리안 전사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인간 개체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삶 자체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지구 위에서의 삶은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전혀 새로운 일들이 시시각각 내 눈앞에 펼쳐질 것이며,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해나갈지도 알 수 없다. 이 광활한 세계 위에서 나 야만전사 바바리안은 나의 아내, 나의 딸과 함께 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