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투박함

강형구 2017. 4. 25. 22:02

 

 

   요즘 나는 가끔씩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나는 훗날 나의 딸 지윤이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될까? 나는 지윤이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지윤이에게 세련되고 똑똑한 사람으로도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는 나의 딸에게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단지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일 뿐,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는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지 않는다. 나는 이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또한 나는 더 이상 직장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5년 전 취직을 해서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집에 대해서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금 수준이면 언제든지 다른 곳에 전세를 얻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입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36년째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옷들을 얻었고, 이 옷들을 계속 입으면 된다. 내게는 새로운 옷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다.

  

   이제 나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대해서 큰 흥미를 갖지 않는다. SNS를 하다 보면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나 스스로의 생각을 종이 위에 글로 써 보는 일이 그나마 가치 있다. 비교적 완결된 문장들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또한 특정한 상황 아래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토대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남들과는 차별화될 정도로 비범하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평범함의 토대 위에서 나는 자연철학을 추구한다. 지난번에 나는 내가 서양 자연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한 명의 이방인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 자연철학을 탐구한다. 요즘에는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의 강의 준비를 위해 정동욱 선배님이 쓴 [패러데이&맥스웰,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훌륭한 책이지만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을 한 번 통독한 결과 나 역시 책의 곳곳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수식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이번 주 수업은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진행할 계획이라, 책을 처음부터 한 번 더 읽어보는 것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다음 학기에는 고등학교에서 과학철학 강의가 개설되지 않을 예정이므로, 이번 학기 강의가 끝나면 나의 오랜 숙제인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든 한 번에 두 개 이상의 일을 하면 그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기 버거워진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논문자격시험만을 준비할 생각이다. 다른 책 혹은 다른 논문을 읽고 싶다는 욕심은 버릴 것이다. 나는 논문자격시험을 치르는 데 필요한 문헌들만을 천천히 읽어보고, 그 내용에 대해서 음미하고 요약 정리한 다음, 그에 관한 나의 생각도 조금 덧붙여 볼 예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들을 억지로 마다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번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보다도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나는 이번 강의 덕분에 나의 부족한 강의 능력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