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다른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 크기 정도 키가 컸다. 기본적으로 신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컸기 때문에 나는 어떤 운동을 하던지 간에 유리했다. 그래서 달리기, 피구, 농구, 축구 등을 하면 항상 나는 비교우위를 선점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다른 친구들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그들의 키는 결국 나를 따라잡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더 이상 나는 ‘키가 아주 큰 학생’이 아니라 ‘평균 이상의 키를 가진 학생’이 되었다. 신체 크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운동에서 나의 본래 실력이 냉정하게 드러났다. 내겐 공을 다루는 재능이 거의 없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순발력이나 민첩성도 부족했다. 쓸 만한 체력과 지구력을 가진 게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나 자신이 비범하고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다.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능력에서도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중학 시절 당시에 나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를 제법 잘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도 아주 똑똑한 편에 들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 시점에서 내가 온전히 나의 평범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다른 평범한 친구들 속에서 융화시키는 길을 택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 지켜왔던 나의 비범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한 비범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부하는 것에 나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공부는 아주 길고 어렵고 지루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진정으로 똑똑하고 독창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공부가 길고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길고 지루한 과정을 버티어 내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사용했다. 공부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책을 읽으면 공부에 대한 나 스스로의 생각을 해 나갈 수 있었고, 그러한 생각의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는 것은 손해를 보지 않는 장사였다. 책을 읽고 습득한 지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원이었다. 또한 나는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공부를 잘 하고 교양이 풍부한 학생이라는 이전까지 갖고 있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성실함을 투자하기만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통과 절차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수학능력시험은 이 시험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집중적인 노력을 들이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험이다. 아주 똑똑한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집요하게 준비를 했다. 나는 시험 준비를 위해 비슷한 내용을 읽고 또 읽었고, 비슷한 문제들을 풀고 또 풀었다. 이는 참으로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대학 입시에 성공했을 때 나는 두 가지의 양면적인 생각을 했다. 우선 나는 내가 입시에 성공한 것이 참 기뻤고 마음에 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나의 원래 능력에 걸맞지 않는 과분한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대학 시절 이후에도 나는 다른 분야에서는 평범함을 감수하면서 특정한 하나의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비록 나는 평범하다 못해 뒤떨어지는 수준의 졸업 학점을 받았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에 대해 독자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비교적 선발 기준이 까다롭지 않았던 육군 장교 시험에 합격한 후, 복무 중에도 꾸준히 도서관에 다니면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서 하나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내가 구사한 삶의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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