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6세 인간

강형구 2017. 3. 25. 17:52

 

   나는 36세 남자 인간이다. 나의 성장은 오래 전에 멈췄다. 그래서 나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내 삶은 퍽 안정되어 있다. 올해로 나는 6년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조금씩 계속 익숙해지고 있다. 나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다. 나는 전세를 얻어 사는 세입자이지만, 대구 내 다른 지역에 내 명의의 아파트 한 채가 있다. 나는 평균 이상의 학력과 직장을 갖고 있으며, 평균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다. 이것이 내가 36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얻은 것들이다.

  

   직장에서 나는 한창 일을 하고 있다. 내 나이의 직원들은 직장에서 일의 기획, 집행, 결과 보고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으로 열심히 일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주중에 출근할 때마다 나 스스로를 한 명의 행위자(agent)라고 생각한다. 지성적인 능력을 갖춘 행위자인 나는 직장에서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그 대가로 매월 급여를 지급받는다. 나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편이라 나와 함께 있으면 그다지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성실함과 착실함을 토대로 내가 맡은 일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나는 5년 넘게 하나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 회사의 업무, 분위기, 사람들에 퍽 익숙해졌다.

  

   나는 지적 호기심이 강한 편이라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다. 나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대부분의 경우 책을 읽으며, 대개 1주일에 책 한 권 정도는 읽는다. 내가 주로 읽는 것은 과학과 철학에 관련된 책들이다. 이러한 책들을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으니, 거의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의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글도 자주 쓴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일기 혹은 수필 형식의 글을 쓰며, 아주 가끔씩은 학술적인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 빈도는 그리 높지 않다. 세상사 대부분의 일들은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내가 학술적인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필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나는 졸업을 하기 위해 학술적인 글을 써야 했지만, 당장 졸업이 급하지 않는 현재로서 내게는 학술적인 글을 써야 하는 동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언젠가는 꼭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싶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직장 업무와 학위 논문 작성을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틈틈이 계속 공부를 진행해야 한다. 나의 공부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내 주변에 별로 없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내가 고등학생인 시절부터 충분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고독하게 자신의 공부를 지금까지 이어왔기에, 공부라는 것은 대개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자로서의 본능에 따라 내 삶에서 나의 적이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나의 적들은 퍽 멀리 있다. 아마도 휴전선 근처에서 무장을 하고 있는 북한 군인들이 나의 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적이 아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충분히 안정된 지위를 갖고 있고, 지금까지 나의 사회적 생존을 이어가는 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자신의 사회적 생존을 위협받는다면 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적으로 삼고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나는 6년 전 취직을 준비할 때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나의 적들에 대항해서 나와 나의 가족을 지켜야 하는 한 명의 남성 인간 개체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의 전투 본능을 상기시킨다. 나는 주먹을 지르고, 발을 차는 연습을 한다. 그러한 행위는 내게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