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어떤 몽상

강형구 2017. 4. 23. 08:06

 

   어젯밤에는 오래간만에 아파트 운동센터에 가서 달리기를 했다. 나는 평소에 마음 편하게 걷거나 달리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어제도 런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재미있는 생각들을 떠올렸는데, 이 생각들은 약간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나를 즐겁게 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고무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비교적 독특한 자연철학의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이때의 자연철학은 서양의 자연철학이다. 나는 내가 동양 자연철학의 후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서양의 자연철학을 계승하게 된 이방인이다.

  

   왜 이방인인 내가 서양의 자연철학을 계승하게 되었을까?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교육체계가 서구적인 것으로 재편되어 있었다. 한학과 유학의 전통은 국가의 근대화 과정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부터 제외되었고, 학교에서 나는 서양 문화에서 개발된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을 공부했다. 나는 이런 서양적인 학문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 스스로가 이 학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 학문들의 심층적인 의미를 알고자 했다. 이렇듯 더 제대로 된 이해, 더 심층적인 이해에 대한 욕구가 나를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해에 대한 욕구는 나라는 개인에게서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의 욕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나의 욕구에 대해 솔직하고 충실했다. 사실 많은 경우 사람은 스스로의 욕구에 대해 솔직하고 충실하기가 어렵지만, 나는 비교적 넉넉한 가정형편 아래에서 나 스스로 시작한 탐험의 길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서양학문의 기원과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철학 연구를 지속했다.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대학에서의 공부를 이어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했다. 하지만 나의 탐험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내가 공식적인 교육과정(대학, 대학원)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먹고 살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을 때, 나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 조직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 철학이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다른 실용적인 학문들을 공부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서양 자연철학의 계승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서양 자연과학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흥미롭게도 서양 자연과학의 역사를 보아도 학자들이 자연철학을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귀족 계급 출신으로 생계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수학자들은 수학 혹은 천문학이라는 실용학문으로 생계를 이어간 것이지, 자연철학이라는 추상적 활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벌었던 것은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의 성직자이자 대주교의 주치의로서 돈을 벌었고, 갈릴레오도 수학과 실용과학에 대한 강의로 대학에서 돈을 벌었다. 이렇듯 서양의 많은 자연철학자들 역시 자연철학을 본업으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세기에 이르면 과학이라는 분야가 전문화되면서 과학의 각 분야들이 자연철학으로부터 독립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연철학의 전통이 중요하며 이 전통을 잇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서양 자연과학에서 새로운 이론적 혁신들이 잇달았는데, 이 시기에 과학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학자들 역시 자연철학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근본적인 철학적 사유를 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에도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철학자-과학자를 일부 찾을 수 있으며, 나는 서양 자연철학의 장구한 전통이 과학자가 아니라 이와 같은 철학자-과학자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서 이와 같은 서양 자연철학의 전통을 우리나라에 이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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