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17년 6월 9일)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철학 마지막 수업을 했다. 2학기 때는 수업이 개설되지 않을 예정이다. 내년 1학기 때 다시 수업이 개설될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이번에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훌륭한 수업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매주 빠듯한 일정으로 수업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수업을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수업을 하는 요령이 부족해서 학생들을 지루하게 한 경우도 많았다. 어찌되었든 수업은 끝났고, 늘 그랬듯이 내게는 포기하지 않고 끝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마도 과학고등학교에서는 내년 1학기에 내가 아닌 다른 강사를 초빙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
나는 내가 과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학에 매료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고등학교에서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과학을 가르치고 그와 동시에 나 역시 공부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2017년 2학기 강좌를 모집하고 있고(6월 23일까지),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강좌 개설 신청을 할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국립대구과학관이 소재하고 있고, 과학관에서는 과학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과학해설사를 필요로 한다. 과학해설사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과학소통 온라인 강좌를 10시간 수강해야 하고, 이후 국립과학관협회가 주관하는 과학해설사 과정(1주일)을 이수해야 한다. 나는 과학해설사 과정을 이수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비록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의 일이 과학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탐구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주 주말에는 알고 지내는 선생님께서 부인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하셨고, 점심식사를 한 후 나는 선생님과 함께 집 근처를 산책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국립대구과학관이 있었고, 나는 예전에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셨던 선생님과 함께 과학관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과학관에는 휴일을 맞이해서 놀러온 가족들이 많았다. 과학관에 찾아온 아이들이 몹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과학관이 우리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테크노폴리스, 즉 과학기술에 특화되어 있는 도시다. 테크노폴리스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있고, 계명대학교와 경북대학교 현풍캠퍼스가 들어올 예정이다. 테크노폴리스에는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구 분원이 소재하고 있고, 국립대구과학관도 있다. 과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는 대학원 선배께서 과학기술학을 강의하고 계시고,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신 한 선생님께서도 주기적으로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을 방문하신다. 비록 지금은 테크노폴리스가 크게 번창한 상태는 아니지만, 앞으로 계명대학교와 경북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서고 음식점과 문화시설이 더 확충되면 과학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과학영화를 즐겨 보고, 과학책을 즐겨 읽으며, 과학관련 문화시설을 자주 찾고,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하는 사람인 나는 과학에 매료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과학에 대한 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과학의 역사와 사상을 공부한 나는 나름대로 과학 애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자들에게 흥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과학 강국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과학 애호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강형구,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