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나가는 것

강형구 2017. 6. 6. 16:56

 

   오늘은 현충일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던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날이다. 현충일은 국가 공휴일이라 오늘은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침에 아내에게 카페에 가서 공부를 좀 하다 오라고 했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휴일에는 아내가 밖에 나가서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한 후 아내는 밖으로 나갔고, 나는 딸 지윤이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해 아이를 보면서 내 할 일을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이제 생후 6개월이 지난 지윤이는 앉기와 기기를 잘한다. 그런 지윤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늘 지윤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지윤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배고프면 분유나 이유식을 먹여준다. 나는 가급적 즐거운 마음을 갖고 이 모든 일들을 하고자 했다. 먼 훗날 지윤이는 아빠인 내가 자신을 이렇게 보살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내는 오전에 카페에서 공부를 한 후, 얼굴과 배 마사지를 받고 오후 3시쯤 돌아왔다. 나는 아내가 돌아온 후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나왔다. 이번 주 금요일에 예정된 이번 학기 마지막 과학철학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카페에 앉아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들으니 일을 할 의욕이 생긴다. 나는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대개 신변잡기적인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학술적인 글을 쓸 것이다. 학술적인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연습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나간다는 전략을 사용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원에서 내 주는 숙제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숙제를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적으로 공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 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수학과 과학은 너무나 어려운 과목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기를 계속했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 역시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학문이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학점이 들쑥날쑥했고, 자연과학대학 수업을 들었던 학기에는 성적이 형편없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4년 만에 평점 B0 이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나의 대학원 생활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학부 졸업 직후 대학원 수업을 1학기 수강하다 휴학을 했다. 수업 내용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휴학 중에 나는 40개월 동안 군 복무를 했고, 군 복무 틈틈이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계속 공부했다. 군 복무가 끝난 다음에는 복학하기 전까지 대학원에서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고, 그런 노력 끝에 대학원 수업들을 무사히 수강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 입학 후에는 또다시 휴학을 했다. 취직 준비를 위해서였다. 취직 후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박사과정에 복학했고, 간신히 학점을 이수했다. 학점 이수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세종시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다시 휴학을 했고, 지도교수님의 허락을 받아 다른 국립대학과의 학점교류를 통해 겨우 학점 이수를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이와 같은 내 삶의 이력을 되돌아보면서, 나 자신이 재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확고한 집념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 물론 이와 같이 고집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내가 나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겨우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할 것이고, 겨우 학술지에 논문 2편을 제출할 것이며, 겨우 학위논문심사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박사논문들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세상의 숱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면서 살아가듯이 말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포기하게 만들 수 없다. 물론 나는 탁월해지는 것을 나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나보다 탁월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고, 그 누구도 내가 나의 일을 해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특수성이 개입된다. 이 일은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데에는 지극히 적은 양의 자본이 소모되며 이 일이 다른 사람의 삶에 큰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일은 계속 해나갈 수 있다. 과연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고집과 집념만으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어린 시절부터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공부를 해 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진흙탕 속을 헤치며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악으로 깡으로 공부를 해 나간다. 항상 뛰어남과 탁월함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해 온 학자들이 있는 반면, 나는 간간이 열등감과 치욕을 느껴가면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공부를 계속 해 온 별 볼 일 없는 재야학자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과학의 역사와 철학은 늘 내 삶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 분야에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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