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131

아인슈타인 담론에 관한 생각

다음 주에 예정된 한국과학교육학회 하계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과학철학에 관한 발표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 오래간만에 다시 아인슈타인의 몇몇 전기들과 그의 이론에 관한 논문들을 읽고 있다. 이렇게 다시 아인슈타인을 생각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종의 행복이다. 돌아보면 처음 아인슈타인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이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다. 김종오 선생이 번역한 [상대성이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의 에세이집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임경순 선생의 [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 김용준 선생이 번역한 [부분과 전체] 중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는 장면.    그렇게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인슈타인이 쓴 글과 아인..

지조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

뜻이 확고하다면 갈 길은 분명해진다.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을 번역했고, 지금은 [시간의 방향]을 번역하고 있다. 나는 꼭 번역되어야 하지만 누구도 번역하지 않았던 책을 번역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번역할 시간에 논문을 써라.” 그런데 내 경험상, 번역을 하면서 꼼꼼하게 읽어야 무엇이 흥미로운 지점이며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러한 파악을 통해 논문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로서는 번역함으로써 논문의 소재가 나온다. 그러므로 나는 논문을 쓰기 위해 번역한다. 중요한 과학철학 원전의 경우, 한 권을 번역하면 그 책에 관하여 최소한 1편 이상의 논문을 쓸 수 있다. 내 생각에 내가 걷는 길은 너무 안전한 길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중요 과학철학자들..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교육

올해 초에 나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근무하던 시기에 나는 과천과학관 소속 모 팀장님과 함께 비형식 과학교육에 관한 학술논문을 한 편 썼는데(당시 저자가 총 4명이었다), 이를 계기로 계속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내 회사 메일로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초 내가 국립대구과학관 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할 때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보내 준 학술대회 일정을 보니, 과학사/과학철학 분과에서 ‘정병훈’ 교수님이 발표 예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매우 반가웠다. 정병훈 교수님은 과학철학 분야에서 파이어아벤트 및 서양 근대과학철학 연구로 명성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경상대학교 철학과에서 퇴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

라이헨바흐 과학철학으로의 초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학철학자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를 만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다. 나는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논문을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특히 그의 시공간 철학을 주제로 삼아 썼다. 내가 지금껏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중 대부분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에 관해 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내가 번역한 8권의 책 중 5권이 라이헨바흐의 책들이다. 라이헨바흐가 1951년에 사망했으니 나와 그 사이에는 별다른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 그야말로 나는 그와 책을 통해 만났다. 그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정우 선생의 번역서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년 독일어, 1956년 영어, 1986년 한국어 출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소 간의 우여곡절과 ..

Becoming a Real Reichenbachian

거듭 생각하는 것이지만, 세상의 아주 많은 일들은 우연을 계기로 이루어진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한 서점에서 라이헨바흐의 책을 발견한 것도 우연이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계속 공부하여 과학철학 박사 및 교수가 된 것도 우연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변두리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변두리란 중심과는 상반되는 개념어이다. 쉽게 풀어 말하면, 나는 지금껏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일보다는 남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을 해왔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억지스럽게 블루오션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정말 흥미롭고 진짜인 것을 발견했는데, 단지 그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라이헨바흐도 그렇다. 내 생각에 라이헨바흐는 칸트만큼이나 ..

생애 최초의 학술상 수상 후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중학생 때까지 받았다고 기억한다. 실제로 중학교 때 나는 시험을 보면 전교에서 1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서 ‘공부를 적당히 혹은 잘 못하는 학생’으로 바뀌었다. 주변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주변에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서 나는 평균 혹은 중상 정도의 성적이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을 잘 못했다.    당연히 대학에서도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물론 나도 장학금이란 것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그건 전액 장학금이 아니라 수업료 면제 장학금이었다. 우등생에게는 졸업장에 “최우등 졸업” 또는 “우..

한 우물만 파기

1982년생인 나의 나이는 42세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높은 확률로 이미 삶을 마감했을 수도 있는 나이다. 내가 18살이던 즈음에 나는 부산의 한 서점에서 한스 라이헨바흐가 쓴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발견했다. 이 책을 발견한 후 읽어보니 재밌지만 어려웠고, 이 책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려 했다. 어떤 대학에 가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었고, 그냥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결과를 토대로 내가 진학할 수 있는 대학에 가려 했다.    운이 좋아 서울대학교에 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 운이 좋아서 서울대학교에 갔으며, 다른 대학교에 갔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대학교에 가도 라이헨바..

역사와 그 교훈

이미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는 작업을 역사라고도,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철학’이라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의 ‘의미’를 따져 묻는 활동인데, 그 의미를 묻고 탐색하기 위해서는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가 곧 철학이냐? 그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철학적 성찰을 위해 역사적 내용이 주요한 참고가 되지만, 역사와 철학은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되는 두 종류의 학술적 활동이다. 역사와 철학은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핵심적이고 중요하다.    사람들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곧 정치를 하거나 경제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왜 필요할까? 내 생각에, 역사가들은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탐구..

교수라는 정체성에 적응하기

국립목포대학교로부터 내가 교수가 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이후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2주 동안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3월 4일인 어제 총장님으로부터 교수 임명장을 받았고, 오늘은 내 연구실(정보전산원 A10동 319호)에 책상과 책장이 들어왔다. 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시스템에는 대략 모두 가입했고 이제 조금씩 시스템을 이용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목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강의했다. 오늘의 출근과 퇴근 모두 목포대학교 통학 버스를 이용했다. 학교 내부 건물들의 위치에도 조금 더 적응한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

교육 공무원인 과학철학자로서의 마음가짐

어제인 2024. 3. 1.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공무원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셋(연 나이로는 42세)의 일이다. 물론 나는 국립대학교에 소속된 교수이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교수’라는 이름보다는 ‘교육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초․중․고등학교(중등 교육)가 아닌 대학교이며, 그중에서도 나는 사립대학교가 아닌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행정’ 업무가 아닌 ‘교수’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우선 나는 나의 행운에 너무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박사과정을 거쳐 계속 대학에서 강의 및 연구 경력을 이어오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