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8

묵묵한 실용주의적 관점

나는 학구적인 사람이다. 평소에 늘 학구적으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게 겉으로 티가 나는가 보다. 내가 학구적인 사람인 것과 묘하게 대응하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지금까지 근무했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수장이 모두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경숙 이사장님께서(전 숙명여대 총장) 한국장학재단에 계실 때 입사했고(2012년), 김덕규 관장님께서(전 경북대학교 교수) 국립대구과학관에 계실 때 입사했으며(2017년), 현재 나는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2024년)이니 당연히 우리 학교 총장님께서 계실 때 입사한 것이다. 아마도 나는 천성이 학자인가 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내가 순수한 학자 혈통을 따르지는 않았다고 본다. 비록 직장의 수장은 교수님이셨지만 이전 직장들 자체는..

일상 이야기 20:18:09

발목 수술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 아래에는 작고 물컹한 혹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생긴 지 10년은 더 된 것 같다. 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내 발톱 무좀은 군대에서 생긴 것이 확실하다. 군대에서 늘 군화를 신고 행군을 해서 그렇다. 그런데 나는 발톱 무좀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물혹도 그랬다. 그냥 살기 바빴던 것 같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로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취직 준비할 때는 직장을 얻느라 바빴으며,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일하고 결혼하고 공부하고 애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발톱 무좀과 물혹(결절종)은 애들이 좀 크면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정형외과에 가서 물혹에 관해 의사 선생님께 문의를 하니, 우선 혹 안에 있는 액체를 빼보면 어떻겠느냐고 했..

일상 이야기 2024.07.23

아인슈타인 담론에 관한 생각

다음 주에 예정된 한국과학교육학회 하계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과학철학에 관한 발표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 오래간만에 다시 아인슈타인의 몇몇 전기들과 그의 이론에 관한 논문들을 읽고 있다. 이렇게 다시 아인슈타인을 생각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종의 행복이다. 돌아보면 처음 아인슈타인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이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다. 김종오 선생이 번역한 [상대성이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의 에세이집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임경순 선생의 [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 김용준 선생이 번역한 [부분과 전체] 중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는 장면.    그렇게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인슈타인이 쓴 글과 아인..

지조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

뜻이 확고하다면 갈 길은 분명해진다.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을 번역했고, 지금은 [시간의 방향]을 번역하고 있다. 나는 꼭 번역되어야 하지만 누구도 번역하지 않았던 책을 번역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번역할 시간에 논문을 써라.” 그런데 내 경험상, 번역을 하면서 꼼꼼하게 읽어야 무엇이 흥미로운 지점이며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러한 파악을 통해 논문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로서는 번역함으로써 논문의 소재가 나온다. 그러므로 나는 논문을 쓰기 위해 번역한다. 중요한 과학철학 원전의 경우, 한 권을 번역하면 그 책에 관하여 최소한 1편 이상의 논문을 쓸 수 있다. 내 생각에 내가 걷는 길은 너무 안전한 길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중요 과학철학자들..

곡식과 과일은 시간이 지나야 익는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어떤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나의 파악 능력과 조작 능력이 결정된다. 나는 2012년 1월에 시작된 나의 공공기관 업무 경력을 올해인 2024년 2월 말에 마무리했고(12년 1개월의 시간), 올해 3월 초부터 정식으로 대학교수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23년 교수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고작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미숙한 초보 교수라는 것은 명확하다. 내가 억지로 고집을 부린다고 금방 능숙한 교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역사와 지침이 있다. 대학교수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

일상 이야기 2024.07.13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교육

올해 초에 나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근무하던 시기에 나는 과천과학관 소속 모 팀장님과 함께 비형식 과학교육에 관한 학술논문을 한 편 썼는데(당시 저자가 총 4명이었다), 이를 계기로 계속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내 회사 메일로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초 내가 국립대구과학관 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할 때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보내 준 학술대회 일정을 보니, 과학사/과학철학 분과에서 ‘정병훈’ 교수님이 발표 예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매우 반가웠다. 정병훈 교수님은 과학철학 분야에서 파이어아벤트 및 서양 근대과학철학 연구로 명성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경상대학교 철학과에서 퇴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

촌스러운 게 뭐가 문제인가?

나는 ‘뉴진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듀서 250(이오공)의 뉴썰 인터뷰를 보고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250은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 그걸 쿨하게 인정하는 게 멋진 거 아니냐’라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너무나 깊이 공감했다. 과연 촌스럽다는 게 무슨 뜻일까? 촌스러운 건 나쁜 것인가? 내가 고등학생 시절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가 대학교에서 들었던 가장 황당한 말은 나를 약간 비하하는 어투가 담긴 “시골에서 올라왔네.” 였다. 시골? 부산은 시골이고 서울은 시골이 아닌가? 과연 시골이란 무엇인가? 시골은 나쁜 것인가? 부산은 시골이라서 서울보다 못한가?    내 생각에 서울이 멋진 것은 전국 곳곳에 있는 특이하고 재능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

일상 이야기 2024.07.05

방학 때 할 일들

‘과학철학 연구자’가 나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면, ‘국립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라는 신분은 나의 사회적이고 공식적인 직책이다.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과 ‘상호작용’한다(‘가르친다’라는 일방향적 표현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와 같은 상호작용은 주로 학기 중에 이루어지며, 학기는 봄/여름/가을/겨울학기로 나뉘는데, 대개 여름학기와 겨울학기는 잘 운영되지 않는다. 학기와 학기 사이의 기간을 ‘방학(放學)’이라고 한다. 교수 관점에서 이때는 의무적으로 대학생들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는, 비교적 자유로운 기간이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방학이야말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많은 일들(수업 준비, 과제 및 시험 채점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

일상 이야기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