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묵묵한 실용주의적 관점

강형구 2024. 7. 27. 20:18

   나는 학구적인 사람이다. 평소에 늘 학구적으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게 겉으로 티가 나는가 보다. 내가 학구적인 사람인 것과 묘하게 대응하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지금까지 근무했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수장이 모두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경숙 이사장님께서(전 숙명여대 총장) 한국장학재단에 계실 때 입사했고(2012년), 김덕규 관장님께서(전 경북대학교 교수) 국립대구과학관에 계실 때 입사했으며(2017년), 현재 나는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2024년)이니 당연히 우리 학교 총장님께서 계실 때 입사한 것이다. 아마도 나는 천성이 학자인가 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내가 순수한 학자 혈통을 따르지는 않았다고 본다. 비록 직장의 수장은 교수님이셨지만 이전 직장들 자체는 대학이라는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주로 행정 업무를 했고, 국립대구과학관에서는 비록 연구원이긴 하였지만 전시, 행사, 행정 등 여러 실무적인 일을 했다. 이 부분에 관하여 나는 상당히 냉정하게 나 자신을 평가한다. 나는 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 느꼈고, 그래서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했다. 나는 학부나 대학원에서 뛰어난 성적을 얻지 못했고 스승님으로부터 수제자로서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각해도 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고, 그렇기에 어찌 되었든 먹고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얻어야 했다.

 

   거듭 말하건대, 국립대학교의 정식 교수가 된 것은 나로서는 과분한 일이며 큰 행운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름 실용적인 관점을 갖추고 사회적인 생존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해보니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세상에 거의 없다. 또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다양하고 복잡한 우연 속에서 기회를 잡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늘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여러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한다. 너무 이상적인 기준을 고집하거나 나만의 입장만을 고수하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필요한 경우 싫어하는 사람과도 타협하고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광대놀음을 하는 게 인생이다.

 

   국립대학교 교수가 되어 너무 좋은 것은, 이제야 비로소 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어 억지로 했던 일들을 마음 편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나는 철학 교수이므로, 언제 어디서든 철학에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읽고 생각하더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왜냐하면 국가 공무원(교육공무원)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 고리타분하고 답답하며 재미없는 삶을 산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나는 철학 교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지식한 나와 친해지고 싶지는 않더라도 법적이나 윤리적으로 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이런 삶이 나쁜 것은 아니며 이런 삶 역시 삶의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대학교수가 된 지 1학기밖에 지나지 않아서 완벽하게 적응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진정한 이상은 철저하게 학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잘 안다. 그랬기에 대학원에 머물지 않고 취직했다. 또한 교수직에 지원할 때도 마치 일반적인 회사에 입사를 지원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저돌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역설적으로, 나는 그와 같이 학계가 아닌 직장에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운 좋게도 교수가 될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이 또한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철저하게 실용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나는 철저하게 학구적인 삶을 살아갈 작정이다. 그게 바로 내가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