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소박하고 무식하게 노력하는 유형

강형구 2024. 8. 4. 10:18

   나는 나 자신을 강인한 맷집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속 자잘하게 맞아가면서도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화려하게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며,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냥 무식하게 내가 원하는 일을 계속 해 왔을 뿐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추진에는 의지와 체력이 필요할 뿐, 별다른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 이 일을 위해 필요한 수준의 지능은 노력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누구나 나처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나의 사고방식이 약간 독특하긴 하다. 나는 부산에 있는 동해중학교에 다녔는데, 동해중학교는 불교 재단에서 설립한 학교였다. 나는 유교의 선비, 불교의 승려에 대한 일종의 선망을 품고 있었다. 내 생각에 선비와 승려는 일관되게 수련하고 단련하여 나름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러한 일종의 종교적인 태도를 가지고 나 자신의 의무를 행하듯 공부했다. 공부를 잘 해서 다른 친구들을 이기고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면 그뿐이었고, 최선을 다한 결과에 따라서 순순히 대학에 진학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그런 방식으로 공부했던 내게 부산과학고등학교는 낯선 공간이었다. 머리가 아주 뛰어난 친구들이 모여서 집중적으로 경쟁하듯 공부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결정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과였다면 법학을 전공했을 것이고, 이과였다면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오늘날 자연과학은 협업과 경쟁을 통해 진행되는데, 이런 방식의 학문 탐구는 나에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선비나 승려, 혹은 교회의 사제와 같이 고독하게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게 좋았다.

 

   부산과학고등학교를 나와 도서관과 대입 입시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나로서는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모든 학생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표준화된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적에 관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그냥 열심히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서는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와 비슷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느꼈다. 아주 똑똑한 학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굳이 열심히 경쟁을 하지 않은 채 내 나름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로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마치 수련하고 단련하듯 읽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겨우 졸업했지만, 용케도 대학원에 합격했고 육군 장교시험에도 합격했다.

 

   대학교수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굳이 멋지고 세련된 방식으로 연구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게 맞는 방식으로 연구한다. 매일의 노동을 하는 것처럼 연구한다. 또한 나는 굳이 국제 학술지에 투고해서 세계적으로 나의 연구 역량을 인정받으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한국 학자로서 우리말로 깊이 있게 독창적인 연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억지스럽게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가? 다만,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될 때 발표를 준비하면서 영어 원고를 쓰고 이후 그 원고를 발전시켜서 국제 학술지에 투고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년에 APPSA(Asia Pacific 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의 학술대회가 대만에서 열리므로, 나는 이 학술대회 참여를 계기로 영어 원고를 쓰려하고 있다.

 

   나는 참으로 소박하고 무식하게 노력하는 유형의 학자이다. 나에게서 세련됨과 고상함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냥 그게 나의 스타일이고 나는 나의 스타일대로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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