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와 가까운 사람이 직위 혹은 권력을 통해 특혜를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의 친척 중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 변리사 등 소위 말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내가 태어난 집안이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좀 강하게 말하면 나의 집안은 별볼일없었음을 뜻한다. 실로 나는 정치와 권력에 관해서 오로지 글과 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실제를 경험하여 생생하게 실감할 수 없었다. 오직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뭣도 모르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니, 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험을 봐서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어떤 사람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할 것이면서 1학년 때부터 법학 관련 교과목을 수강했고 전과를 준비했다. 행정고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나는 그런 고시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과학철학만 있었으므로,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다소 특이한 사람으로 보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를 충실하게 따랐다. 그 제도 내에서 무슨 특권을 쓰거나 반칙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랐고,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원칙과 기준에 순순히 응했다. 내 젊음을 혹사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했고, 대학에서도 학교의 규정을 따랐다. 군대의 경우 일부러 군대에 가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생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던 “육군 장교”라는 길을 택했다. 육군3사관학교에서 훈련받으면서 나는 몇몇 후보생이 그다지 훈련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좋고 편한 부대에 배치되는 모습을 봤다. 분명 그러한 처사에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도 내게는 나 자신 이외에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반칙과 특권 없이, 전혀 친분 없이 그냥 나의 실력만으로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정식으로 취업을 준비한 지 6개월 만에 취직에 성공했으니 그다지 나쁜 성과는 아니었다. 대학 교수직도 마찬가지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1년 만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았을 뿐 나를 도와준 다른 특혜나 반칙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운이 좋으며 퍽이나 특이한 경우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대학교수가 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권이나 반칙의 도움을 받지 않았듯, 나의 아이들도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할 것이며, 앞으로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고 편법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고지식한 삶을 계속 고집한다면 아마도 나는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며 어쩌면 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잘 생겨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크게 상관은 없는데,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삶에서 바라는 게 크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대학교수로서 내게 부여된 공적 책무를 온전히 다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학부 시절에도, 직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대학에서 일하는 게 어울린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잘 해서도 아니었고,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하며 별로 재미없고 규칙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내가 대학에서 교수로 생활하는 게 가장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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