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8

삶에 충실하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나는 문득 이 세상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이미 거의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일은 내 삶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의 궁극적인 지향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열심히 연구하며 사는 것일 뿐이다. 오직 그것 밖에는 없다.    당연히 나에게는 가족이 중요하지만, 이미 가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지내기 넉넉할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고, 대출금도 퍽 많이 갚아서 3, 4년 정도 지나면 빚을 모두 청산하게 된다. 아내는 직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고, 아이들도 이제 제법 커서 조만간 나의 도움 없이도 매일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연구..

일상 이야기 2024.04.28

블로그 글쓰기 12년

내가 이 블로그에 처음 쓴 글의 날짜는 2012년 10월 27일이다. 오늘이 2024년 4월 20일이니, 블로그를 시작한 후 꽉 채우지는 않았으나 대략 12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셈이다. 그 첫 번째 글에서도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고 있다. “조용히, 조용히, 무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평범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삶을 바라보는 나의 이와 같은 입장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지만 사람이 마냥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에게도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했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한국장학재단, 국립대구과학관을 거쳐 ..

일상 이야기 2024.04.20

상황과 스타일에 맞게 사는 것

나에게는 나의 인간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벌여서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차분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다. 부산에서 살 때도, 서울에서 살 때도, 강원도 홍천에서 군 복무를 할 때도,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았고 그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글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 군대, 직장 등은 내가 사회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 모든 사회적 조직에서 나는 평균적인 수준으로 일했으며 남들의 눈에 띄게 특출한 역량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내가 공부 혹은 연구에서 특출나지 않다는 사실은 내 삶의 이력을 보면 잘 드러난다. 부산과학고..

일상 이야기 2024.04.13

교수의 삶은 여유롭지 않다!

나의 경우 아직 교수로 정식 발령을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약간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교수의 삶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나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교수의 하루 일과는 내가 한국장학재단이나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할 때와 비교할 때 결코 더 여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 일정이 빡빡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이번 학기에 나는 9학점을 담당하며, 수업은 화-수-목요일에 있다. 월요일에 화요일 수업을 준비하고, 화요일에 수요일 수업을 준비하며, 수요일에 목요일 수업을 준비한다. 모두 처음 담당하는 과목들이라 월, 화, 수요일을 온전히 수업 준비에 바쳐도 시간이 모자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연구자..

일상 이야기 2024.03.28

교육자의 집안

내가 올해 3월부터 국립대학교의 교원이 되면서 우리 가족의 정체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나의 친가 및 외가 친척 중에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기가 어려운데(먼 친척 중에는 당연히 박사학위 소지자가 있겠지만), 작년 2월에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우리 집안에도 박사가 배출되었다. 내가 교수가 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주된 정체성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누나가 초등 교사(교육 공무원), 매형이 국립대학교 직원, 나와 아내가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교수가 되었으니 우리 가족은 교육자의 집안이 되었다. 나와 누나 모두 교육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 내가 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교육 공무원이 되면서부터 좀 더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공공기관 직..

일상 이야기 2024.03.24

카페에서 멍하게 있는 시간

오늘은 목포대학교에서 오후 수업을 끝내고 곧장 전북대학교에 가서 과학학과 구성원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 까마득한 선배 교수님들께서도 강연에 참여하셔서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게 한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주에 있는 숙소 근처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는 투룸에 들어가기가 다소 적적해서 그냥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마침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여서 카페에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다. 이제 다소 익숙해진 카페라 늘 내가 앉는 자리가 있다.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약간 지친 느낌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그냥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영상 통화..

일상 이야기 2024.03.21

욕심 없음의 묘미

생각하면 할수록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나에게 이로웠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나도 왜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나의 성격 혹은 기질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곧장 대입 입시학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한동안(거의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부산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주로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만약 내가 대입 입시만을 목표로 했었다면 그런 정신 나간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행위는 퍽 소박한 것이었다. 책들은 공공시설인..

일상 이야기 2024.03.13

시행착오를 겪으며

국립목포대학교 임용 확정 통보를 받은 후 가장 걱정했던 문제가 살 집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나는 목포대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방을 하나 얻으려고 했다. 사실 우리 가족 전체가 이동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내가 여전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아이들 역시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포대학교 근처에는 원룸 전세가 없고 모두 월세였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광주 또는 목포였다. 그런데 목포로 집을 얻으면 주말에 대구로 왕복 이동하는 거리가 광주보다 더 멀어질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광주의 원룸 전세를 알아보았는데, 다행히 두세 건 정도 매물이 있었다. 광주송정역 근처의 원룸은 시설이 제법 좋았지만,..

일상 이야기 2024.03.09

큰길에는 문이 없다

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 과학기술철학 전공 교수 합격 통보를 받은 지난 2월 20일 저녁 이후, 나는 일주일 동안 실로 참 바쁘게 지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퇴직 의사를 밝히고,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요구하는 여러 행정적인 서류들을 준비했다. 공무원 채용 신체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특이 사항은 없었고, 마약류 중독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지난 2월 26일 월요일에는 아내와 함께 휴가를 써서 광주에 있는 한 투룸을 숙소로 구했다. 목포대에서도 다른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제 정말로 대학교의 교수가 될 것임을 조금씩 실감한다. 나는 나 자신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다. 아마도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재미있었고,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것에 대..

일상 이야기 2024.02.28

국립대학교의 교수가 되는 일

사실 나는 내가 대학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작년 2023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과학철학에 대한 의무감을 깊이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과학철학 전공 박사로서 내가 할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번역하고,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철학 연구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람직한 이력을 가진 과학철학 연구자는 아니다.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공부하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결국 오랜 시간이 걸려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강의 경력 또한 직장을 다니면서 쌓았다. 그렇기에 한결같이 연구에만 매진해 온 연구자에 비해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

일상 이야기 202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