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72

묵묵한 실용주의적 관점

나는 학구적인 사람이다. 평소에 늘 학구적으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게 겉으로 티가 나는가 보다. 내가 학구적인 사람인 것과 묘하게 대응하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지금까지 근무했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수장이 모두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경숙 이사장님께서(전 숙명여대 총장) 한국장학재단에 계실 때 입사했고(2012년), 김덕규 관장님께서(전 경북대학교 교수) 국립대구과학관에 계실 때 입사했으며(2017년), 현재 나는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2024년)이니 당연히 우리 학교 총장님께서 계실 때 입사한 것이다. 아마도 나는 천성이 학자인가 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내가 순수한 학자 혈통을 따르지는 않았다고 본다. 비록 직장의 수장은 교수님이셨지만 이전 직장들 자체는..

일상 이야기 20:18:09

발목 수술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 아래에는 작고 물컹한 혹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생긴 지 10년은 더 된 것 같다. 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내 발톱 무좀은 군대에서 생긴 것이 확실하다. 군대에서 늘 군화를 신고 행군을 해서 그렇다. 그런데 나는 발톱 무좀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물혹도 그랬다. 그냥 살기 바빴던 것 같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로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취직 준비할 때는 직장을 얻느라 바빴으며,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일하고 결혼하고 공부하고 애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발톱 무좀과 물혹(결절종)은 애들이 좀 크면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정형외과에 가서 물혹에 관해 의사 선생님께 문의를 하니, 우선 혹 안에 있는 액체를 빼보면 어떻겠느냐고 했..

일상 이야기 2024.07.23

곡식과 과일은 시간이 지나야 익는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어떤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나의 파악 능력과 조작 능력이 결정된다. 나는 2012년 1월에 시작된 나의 공공기관 업무 경력을 올해인 2024년 2월 말에 마무리했고(12년 1개월의 시간), 올해 3월 초부터 정식으로 대학교수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23년 교수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고작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미숙한 초보 교수라는 것은 명확하다. 내가 억지로 고집을 부린다고 금방 능숙한 교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역사와 지침이 있다. 대학교수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

일상 이야기 2024.07.13

촌스러운 게 뭐가 문제인가?

나는 ‘뉴진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듀서 250(이오공)의 뉴썰 인터뷰를 보고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250은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 그걸 쿨하게 인정하는 게 멋진 거 아니냐’라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너무나 깊이 공감했다. 과연 촌스럽다는 게 무슨 뜻일까? 촌스러운 건 나쁜 것인가? 내가 고등학생 시절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가 대학교에서 들었던 가장 황당한 말은 나를 약간 비하하는 어투가 담긴 “시골에서 올라왔네.” 였다. 시골? 부산은 시골이고 서울은 시골이 아닌가? 과연 시골이란 무엇인가? 시골은 나쁜 것인가? 부산은 시골이라서 서울보다 못한가?    내 생각에 서울이 멋진 것은 전국 곳곳에 있는 특이하고 재능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

일상 이야기 2024.07.05

방학 때 할 일들

‘과학철학 연구자’가 나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면, ‘국립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라는 신분은 나의 사회적이고 공식적인 직책이다.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과 ‘상호작용’한다(‘가르친다’라는 일방향적 표현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와 같은 상호작용은 주로 학기 중에 이루어지며, 학기는 봄/여름/가을/겨울학기로 나뉘는데, 대개 여름학기와 겨울학기는 잘 운영되지 않는다. 학기와 학기 사이의 기간을 ‘방학(放學)’이라고 한다. 교수 관점에서 이때는 의무적으로 대학생들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는, 비교적 자유로운 기간이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방학이야말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많은 일들(수업 준비, 과제 및 시험 채점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

일상 이야기 2024.07.01

뉴진스(NewJeans) 음악을 사랑함

지난 5월 말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국의 그룹 ‘뉴진스(NewJeans)’의 음악을 들으며 거의 한 달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뉴진스를 기술하기 위해 ‘아이돌그룹’, ‘걸그룹’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내 생각에 ‘뉴진스’는 새로운 형태의 ‘아티스트’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술가 집단’이자 일종의 ‘팀’이다. 이 집단의 명시적인 5명의 구성원(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은 이 예술가 집단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민희진 대표는 이 그룹 혹은 팀의 실질적인 리더이며, 민희진 대표 곁에서 아주 실력 있는 음악, 영상, 안무 프로듀서가 돕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 집단이 전통적인 기업적 위계 조직을 이루고 있을까? 왜 ..

일상 이야기 2024.06.27

국립목포대학교에서의 한 학기를 지낸 후

어느덧 국립목포대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지났다. 교양학부에 소속된 나는 이번 학기에 ‘MNU 대학생활’, ‘디지털 문서와 콘텐츠’, ‘로봇의 윤리학’ 과목을 강의했다. 비교적 급하게 교수 임용이 결정되다 보니(아마 2월 20일 저녁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일들을 무사히 끝내고 한숨 돌리고 있다. 나름 무탈하게 첫 학기를 보냈다고 생각하니 적잖은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선 나는 국립대학교의 교수직을 내가 30세(2012년 1월)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임해 왔던 공직(公職)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내가 30세 때부터 공공기관 직원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의 중앙 공공기관(한국장학재단, 국립대구과..

일상 이야기 2024.06.22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여

나는 아내와 2014년 5월 31일 부산 온천장에 있는 호텔농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에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다 왔다. 결혼식 이후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내와 나는 둘 다 가난한 대학원생이던 시절에 서로 사귀기 시작했다. 그게 2010년 5월 15일이다. 우리는 4년 동안 연애한 후 결혼했다. 사실 우리는 2013년 봄에 결혼하고 싶었지만, 마침 누나가 그해에 결혼했기에 우리는 한해 더 기다렸다. 내가 32세, 아내가 30세 때 결혼했다.    결혼했을 때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나의 직장이었던 한국장학재단은 서울에, 아내의 직장인 국립대구과학관은 대구에 있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투룸에서 지냈고, 아내는 대구에 있는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지냈다. 그랬기에 우..

일상 이야기 2024.06.19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나와 아내 사이에는 아이가 셋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애가 셋 있다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애국자시네요”라고 한다.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아내와 내가 아이를 갖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부부는 이른바 ‘난임 병원’이라는 곳에 오래도록 다녔다. 대구에 사는 우리는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마리아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녔다. 둘째, 처음부터 우리가 아이 셋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첫째를 가진 이후 둘째를 바랐을 뿐, 둘째와 셋째까지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우리 가정의 재정 형편이 아이 셋을 거뜬히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세종시 기획재정부에서 파견 근무를 할 때 알게 된 어떤 사무관의..

일상 이야기 2024.06.15

검소하게 절약하는 삶

내가 어른이 되어서 좋았던 것은 더 이상 옷을 자주 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나는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집에 있는 옷을 꺼내 입었고, 머리도 대충 빗질 몇 번을 해서 손질하는 게 다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는 부모님께 옷이나 신발을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다. 물론 레고 장난감이나 게임기, 게임팩 등을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은 많다. 그런데 이건 취향 또는 성향의 문제인 것 같다. 레고나 게임은 한 번 사면 계속해서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옷도 한 번 사면 계속 입을 수 있긴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멋지게 꾸미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은 약간 있었다. 한창 어릴 때는 육체적인 활동량이 지금에 비해..

일상 이야기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