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여

강형구 2024. 6. 19. 09:32

   나는 아내와 2014년 5월 31일 부산 온천장에 있는 호텔농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에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다 왔다. 결혼식 이후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내와 나는 둘 다 가난한 대학원생이던 시절에 서로 사귀기 시작했다. 그게 2010년 5월 15일이다. 우리는 4년 동안 연애한 후 결혼했다. 사실 우리는 2013년 봄에 결혼하고 싶었지만, 마침 누나가 그해에 결혼했기에 우리는 한해 더 기다렸다. 내가 32세, 아내가 30세 때 결혼했다.

 

   결혼했을 때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나의 직장이었던 한국장학재단은 서울에, 아내의 직장인 국립대구과학관은 대구에 있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투룸에서 지냈고, 아내는 대구에 있는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지냈다. 그랬기에 우리의 신혼집은 아주 소박하고 조촐했다. 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에 있는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지금도 테크노폴리스의 집값은 저렴한 편이지만, 그때는 더 저렴했다. 아마 그게 2014년 겨울 혹은 2015년 초봄이었을 것이다.

 

   2015년 10월쯤에 서울에 있던 한국장학재단의 본사가 대구로 이전했고, 그 결과 우리는 주말부부 생활을 그만할 수 있었다. 2016년 12월, 첫째 지윤이가 태어났다. 2017년에 국립대구과학관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합격한 후, 나는 그해 7월부터 한국장학재단이 아닌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직장이 가까워져서 출퇴근이 훨씬 편해졌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여건도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맞벌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나는 아내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과학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고, 과학관에 입사했을 때 너무나 기뻐했었다.

 

   우리는 또 다른 신축 아파트 전세를 한 번 더 거친 후, 과학관 근처에 있는 아파트(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한 채를 샀다. 수도권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둘째와 셋째를 임신하게 되자, 근처에 있는 좀 더 넓은 아파트를 새로 한 채 사서(저렴하게 나온 매물이어서 급히 샀다) 이사했다(2020년). 이유는 단순했다. 훗날 아이들에게 비록 작더라도 각자 자기의 방 하나씩 쓸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이사한 아파트에서 잘 지내고 있다. 비록 내가 2024년 3월부터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다시금 주말부부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교수 특히 나와 같은 철학 전공 교수는 책과 논문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구할 수 있는 편이라 가급적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늘 나처럼 재미없고 로맨틱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해 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한다. 내가 생각해도 만약 아내가 이 세상에 없었다면 나는 평생 결혼하지 못했을 것 같다. 농담도 잘 못하고, 잘 놀지도 못하며, 외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책과 논문을 붙잡고 사는 남자를 이 세상의 어떤 여자가 좋아해 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내의 특이한 취향(철학과 물리학을 좋아하는 남자)을 생각할 때마다 이 세계 속에서 사는 것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미숙했던 대학원생 시절에 만나, 함께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에 성공했으며, 어느덧 아이 셋을 기르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아내와 나는 지금껏 서로 의지하며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많은 일을 이루어 냈다. 우리는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두려움 없이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지만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나와 같이 부족한 사람과 함께 해준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앞으로 남은 40년(?) 동안에도 서로 감싸주며 다정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