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곡식과 과일은 시간이 지나야 익는다

강형구 2024. 7. 13. 11:19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어떤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나의 파악 능력과 조작 능력이 결정된다. 나는 2012년 1월에 시작된 나의 공공기관 업무 경력을 올해인 2024년 2월 말에 마무리했고(12년 1개월의 시간), 올해 3월 초부터 정식으로 대학교수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23년 교수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고작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미숙한 초보 교수라는 것은 명확하다. 내가 억지로 고집을 부린다고 금방 능숙한 교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역사와 지침이 있다. 대학교수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소속된 국립목포대학교에는 명확한 학교 규정이 있고, 나는 기본적으로 그 규정에 따라서 나의 공식적인 여러 업무를 행한다. 이 규정은 1946년 이래로(목포사범학교) 오랜 역사를 거치며 형성된 후 유지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며 상당히 공고한 성격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아온 나의 경험상, 공적 기관에서는 규정이 우선이지 사람이 우선인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개인을 넘어서는 객관적인 규정과 방침이라고 믿는다.

 

   다음으로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생활 비용 지출이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은 평소에 이전처럼 계속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나는 학교에서 일을 할 때는 무안과 광주에 있고 나머지 시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에 부득이하게 학교 인근에 별도의 숙소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두 집의 살림을 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생활 비용 지출을 철저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며, 꼭 필요한 비용 이외에는 가급적 돈을 쓰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나와 아내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상황이므로 가계가 비교적 무난하게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잠시라도 마음을 안이하게 먹게 되면 재정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대학교수의 삶에 적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이러한 종류의 삶에 맞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습관화되는 매일의 일상, 매일의 노동이 필요하다. 특히 나는 번역과 연구논문 집필을 나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주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일관되고 꾸준하게 매일 틈틈이 번역하고, 내 하루의 노동 시간의 일부를 연구논문 집필을 위해 할당한다면, 매년 혹은 4~5년 단위로 학교가 요구하는 연구 실적을 충분히 채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잘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저 공식적인 지침 혹은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실 나와 같이 부족한 능력의 사람에게는 그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만 해도 상당히 벅차고 힘들다.

 

   앞으로 내 삶에 남은 과업은 그저 과학철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일 뿐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물론 아이들을 잘 키우는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나는 참으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워보고 싶다. 비싸고 비정상적인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철저하게 공교육 중심으로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싶다. 다만 국내 여러 유적지 및 박물관을 꾸준히 방문하는 것, 주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수도권과 광역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문화를 체험시키는 일은 열심히 할 예정이다. 이것은 특권적 교육이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 시민이 갖추어야 하는 ‘교양’의 문제라 생각한다.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만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매일 차근차근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서 쌓아나간 경험은 우리를 쉽게 기만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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