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발목 수술을 하다

강형구 2024. 7. 23. 21:49

   언제부터인가 내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 아래에는 작고 물컹한 혹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생긴 지 10년은 더 된 것 같다. 대체 언제부터 생겼을까. 내 발톱 무좀은 군대에서 생긴 것이 확실하다. 군대에서 늘 군화를 신고 행군을 해서 그렇다. 그런데 나는 발톱 무좀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물혹도 그랬다. 그냥 살기 바빴던 것 같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로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취직 준비할 때는 직장을 얻느라 바빴으며,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일하고 결혼하고 공부하고 애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발톱 무좀과 물혹(결절종)은 애들이 좀 크면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정형외과에 가서 물혹에 관해 의사 선생님께 문의를 하니, 우선 혹 안에 있는 액체를 빼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주사로 찔러 액체를 빼내려 했는데, 혹이 생긴 지 오래되어 그런지 액체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주사 자국 근처에서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오더니, 며칠 전부터는 혹 근처가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물혹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피부를 절개해서 혹을 빼내기로 했다. 나는 전신마취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부분마취를 하고자 했고, 큰 수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입원을 하지도 않으려 했다. 그렇게 수술 날짜는 다가왔고 그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아침에 둘째와 셋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난 후, 병원에 가서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술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오른쪽 발목의 혹 근처를 다시 한번 촬영하며 혹의 위치와 깊이를 보았다. 이후 나는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대에 누워 마취 주사를 맞을 때는 아주 아팠지만, 거듭 주사가 놓이면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갔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그때는 완전히 부분마취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때 나는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 신체의 일부분이 절개되고 날카로운 수술 도구들이 내 몸의 내부를 할퀴고 긁고 있는데도 내게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술하는 동안 나는 계속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수술하는 의사 선생님과 그 곁에 있는 간호사분들은 내 발목을 보고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런 장면이 너무 익숙하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장면을 일반 사람들이 보면 끔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인 나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마취제의 화학 성분이 나의 발목 세포들과 나의 뇌세포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데 과연 아픔이란 무엇일까? 왜 나는 마취제를 맞게 되면 아픔을 느끼지 못할까? 이렇게 마취제를 맞으면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도 전쟁에서는 마취제를 많이 썼을 것이다. 특히 극심한 부상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병사에게는 꼭 필요한 약품이었으리라.

 

   고통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으므로, 나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내 발목에 있던 혹이 긁혀 들어내어지고 열렸던 피부가 봉합된다고 추측했을 뿐이다. 결국 수술은 30분 정도로 끝났고, 수술실에서 나온 나는 병원복을 벗고 수납을 한 후 약국에서 약을 타서 병원을 나섰다. 절뚝거리는 발로 겨우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한 부위가 따갑기는 했지만, 내 몸에 10년 동안 붙어 있던 혹(양성 종양이긴 하다)을 떼어 냈다는 생각에 속이 제법 후련하기도 했다. 밤인 지금은 상태가 훨씬 더 나아졌다. 발목에 굵게 붕대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걷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

 

   이번 수술을 통해 새삼스럽게 의사 선생님들이 참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일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언제까지나 소중한 일일 것이다. 괜히 의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병자의 치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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