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생애 최초의 학술상 수상 후

강형구 2024. 5. 27. 17:10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중학생 때까지 받았다고 기억한다. 실제로 중학교 때 나는 시험을 보면 전교에서 1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서 ‘공부를 적당히 혹은 잘 못하는 학생’으로 바뀌었다. 주변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주변에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서 나는 평균 혹은 중상 정도의 성적이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을 잘 못했다.

 

   당연히 대학에서도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물론 나도 장학금이란 것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그건 전액 장학금이 아니라 수업료 면제 장학금이었다. 우등생에게는 졸업장에 “최우등 졸업” 또는 “우등 졸업” 표시를 해 주지만 나의 졸업장에는 그런 표시가 없다. 물론 내게는 정확하게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해야 할 일을 정해진 기간 안에 마쳤다는 자부심일 뿐, 무엇인가 내가 잘했다는 자부심은 아니었다. 이후 군대에서도, 대학원에서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해서 상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물론 한국장학재단과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재직할 때 몇 번 상을 받긴 했다. 그러나 그 상들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이 받는 상이어서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진 못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2024. 5. 25.)에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된 대한철학회, 대동철학회, 새한철학회 연합 학술대회에서 나는 대한철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내 생애 최초로 받는 학술상이었다. 수상자는 나 혼자였다. 나는 지금껏 뚝심 있게 연구한다는 생각으로 과학철학을 계속 연구해 왔지만, 학계에서 나에게 상을 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나 스스로 부족함을 절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감사하게도 학술상을 주셨고 상금도 주셨다. 솔직히 말해, 중학생 시절 이후 나는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격려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나는 대구과학관에서 근무할 때 경상 지역에 있는 몇몇 철학 학회에 가입했다. 그 전에 나는 한국장학재단이 대구로 이전할 것이라는 계획을 미리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입사 지원을 했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이시며,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장학재단,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근무한 나는 내가 계속 대구 지역에서 생활하리라 믿었기에 경상 지역의 철학 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자 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 중심의 철학 학회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늘 수도권보다는 지역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융성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나는 대한철학회, 대동철학회에 논문 투고도 자주 하고 논문 심사도 제법 했다. 내가 속한 지역 철학 학회에서 나를 이렇게 인정하고 칭찬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나는 우리나라의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과학철학자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전라 지역(국립목포대학교)에서 활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은 대구에 있어 계속 경상 지역과의 인연은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 나는 전라 지역과 경상 지역을 아우르는 철학자로서 거듭나고자 한다. 철학과가 없어지고 통폐합되기도 하는 ‘철학의 위기’인 이 시대에, 끝까지 철학에 대한 의리를 지키면서 철학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대한철학회에서 주신 상금과 꽃다발은 그대로 마나님께 바쳤다. 곧 아내와 나의 결혼 10주년(2024. 5. 31.)이라, 이를 기념하는 선물로 미리 아내에게 준 것이다. 나와 같은 미숙하고 부족한 연구자에게 상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일관되고 꾸준하게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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