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보통 사람의 철학

강형구 2021. 4. 13. 17:32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초인의 철학’을 제시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기존에 수립되어 있던 가치들을 전복하고 새롭게 자신만의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처럼 평범하지 않고 예외적인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하는 철학을 수립해 왔다. 또한 예외적이고 뛰어난 사람들만이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문자로 기록된 언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렇듯 예외적인 인물들이었고, 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읽혔으므로, 자연스럽게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예외적인 인물들을 기준으로 인간과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고 컴퓨터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된 21세기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예외적인 인간을 기준으로 하는 철학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초인의 철학’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철학’을 수립하고자 한다.

 

   나는 초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키워 온 보통 사람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나는 수학과 과학에 대해서는 이해력이 빠른 것이 아니라 느린 사람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의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제도(예를 들어 수학능력시험)는 맹점을 갖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같거나 비슷한 내용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연습한 학생들이 시험을 잘 치르게 되어 있다. 나는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시험 제도 아래에서 이 시험을 잘 치르도록 집중적으로 훈련했기 때문에 시험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오로지 시험 준비에만 바쳤다. 나의 집은 크게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적어도 이 기간 동안에 내가 시험 준비만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의 한계, 나 자신의 노력, 운이 결합하여 나는 대학에 입학했던 것이지, 결코 내가 뛰어난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오히려 나의 사례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고 머리가 뛰어나지 않아도 대학 입시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교에 다닌 4년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친척 집에서 살지 않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더라면 더 재미있는 대학생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글 쓰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또한 나는 좀 더 사람들과 표면적이고 부드럽게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 누구와도 적당히 친하게 지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좀 더 학점에 신경을 쓰고, 재정적으로 부모님께 좀 더 의존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이야기지만,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고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군 복무와 관련해서도 나는 운이 좋았다. 우선 내가 지원한 육군 학사장교 자체가 경쟁률이 높지 않았다. 경쟁률이 2대 1도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경쟁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나는 홍천도서관이 있는 곳에서 장교 생활을 한 까닭에 퇴근 후나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도서관에 출입하기 어려운 외진 곳에서 근무했다면 군 생활을 잘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에서 나는 전혀 두드러지지 않고 묵묵하게 근무하는 장교였다. 군 생활 동안 변변한 포상 하나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같이 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였다. 나를 대학원에 입학시켜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대학원 석사과정 2년 동안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학문에 큰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석사졸업 이후 나는 그 시절의 모든 청년들이 그랬듯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좋지 않은 학부 학점,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의 불리함, 비교적 많은 나이 등과 같은 열악한 조건들 속에서 취업을 준비했다. 매일 아침 구립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생활을 했고, 각종 자격증들을 부랴부랴 취득했으며, 모아두었던 돈을 활용해서 아끼고 아끼면서 취직 준비를 했다. 그때 나는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았다. 취업준비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력이 약화되기까지 했다.

 

   첫 직장인 한국장학재단에 입사해서도 나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근무 평가가 별로라서 아마 계속 장학재단에 있었어도 승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비록 학문적인 능력은 부족하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박사과정 수업들을 들었다. 결국 그렇게 박사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장학재단이 대구로 이전한 이후 계속 근무를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과학철학 강의를 하게 되면서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자라났다. 게다가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를 채용했다. 다행히도 석사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에 입사 지원을 했고 이직에 성공했다. 아마도 그 당시 강력한 경쟁자들이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나의 운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이 거의 없다. 이와 더불어 부모님 때문에 나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부모님을 가진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평균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지원 이외의 모든 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 얻은 성취였다. 고등학생 시절 매일 규칙적으로 꾸준히 공부한 것, 대학 시절 이후 꾸준히 운동했던 것, 취업 준비 당시에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 등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어떤 청탁의 도움도 받아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운’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은 것인지 모른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대부분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와 아내는 아이 셋을 낳았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나와 아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최소한 둘 이상은 낳아야 사회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이가 하나뿐이라면 아이가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하나만 낳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아이 셋을 낳아 기르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와 아내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어야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 아닌가.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이 사회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특별하지 않은 지적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부를 한다. 그냥 공부 애호가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 전문가로서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똑똑한 사람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똑똑하지 않고 운이 좋았을 뿐이며 그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자 한다. 힘들게 계속 공부를 이어 나가고, 논문을 투고했다 여러 번 게재가 거절되는 상황을 극복하면서, 끝내 학위를 취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학문적 기여를 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철학은 철저하게 보통 사람의 철학이며,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철학이다. 나의 철학은 승자의 철학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를 가진 일반 서민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