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범한 사람의 일상 혹은 임무

강형구 2021. 4. 11. 12:01

   부산에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박사학위 논문 작업을 며칠 째 하고 있다. 요즘에는 흔하디흔한 것이 박사학위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은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에 운이 좋아서 입학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대학은 나와 같은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졸업하기에는 참으로 버거운 대학이다. 나는 영어로 논문을 쓰지 않고 우리말로 논문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쓰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어렵다. 대학 학부를 겨우 졸업했고 대학원 석사 과정 또한 겨우 졸업했듯, 대학원 박사 과정 또한 겨우 겨우 힘겹게 졸업하게 될 것 같다. 너무나 힘들고 버겁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 것이 그나마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나는 나의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내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넘볼 수 없는 사람을 쫓아가려다가 가랑이를 찢기 보다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행하고 그 결과를 사회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상에는 최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길에는 정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명문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 대구 근처에서 산다면 경북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고, 부산 근처에서 산다면 부산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학위 논문도 마찬가지다.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며 우수하게 졸업할 수도 있겠지만, 겨우 겨우 논문이 통과되어 어렵게 졸업할 수도 있는 것이며, 아마도 나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최상급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약간 수준이 낮지만 KCI에 등재되어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굳이 높은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필요가 있을까? 거듭된 수정을 거쳐서 수준 높은 학술지에 게재하게 된다면 아주 기쁘겠지만, 굳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수준의 학술지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나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유지하면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을 행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 혹은 기준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높은 사람들의 시선 혹은 기준에 맞춰져 있다면, 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행복보다는 고통을 안겨다주지 않을까? 이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관점이 최근 들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만약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신속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소 소박하고 순진하고 우직하고,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전략적인 재정 투자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그 방법도 잘 알지 못하는 40살 한국 남성에 지나지 않는다. 박사학위 논문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뛰어난 학위 논문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며, 학위를 받고 난 이후에도 학술적으로 크게 인정받아 대학에 진출하기는 몹시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고, 이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일들을 찾아보자는 것이 요즘 내가 갖게 된 새로운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자 하는 습성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소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므로, 이러한 습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겉보기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평범하다는 것, 내가 대한민국의 특정한 역사 과정에 속한 숱한 사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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