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나다운 삶을 살고 있음

강형구 2021. 3. 27. 21:04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은 별로 갖지 않았다. 그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매달렸을 뿐이고, 그래서 성적이 그럭저럭 잘 나왔다. 하지만 나는 최고로 잘하는 집단에 속하지는 못했고 그냥 적당히 잘하는 집단에 속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주위에는 늘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물리학자가 되어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부산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그 곳에서는 가장 강한 강도의 암기 위주 교육을 하고 있었고, 과학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으며, 머리가 뛰어난 친구들이 허다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다. 나는 교과과정 진도가 끝나는 2학년 여름에 학교에서 나왔다. 나는 대입재수학원에서 과학고등학교에서 나온 친구들만 모아서 만든 반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이과 대신에 문과를 택했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닌 다른 재수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수학능력시험은 꾸준히만 공부하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시험이었다. 나는 우직하고 성실하게 공부했고, 그 결과 괜찮은 수능 성적을 얻었으며, 덕분에 내신 성적도 좋게 평가받을 수 있었다. 나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내가 특별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정확히 4년 8학기 만에 평균적인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육군학사장교에 지원하여 합격했지만 군대에서도 나의 근무 평가는 상위권에 속하지 않았다. 그저 중간 정도였을 뿐이다.

 

   나는 군 복무 이후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도 그다지 특출한 학생이 아니었고, 석사 이후 입사한 한국장학재단에서의 근무 평가도 중간 정도였다. 박사과정에서의 성적도 중간,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이직한 이후의 근무 평가도 중간 정도다. 이런 모든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나는 뛰어난 사람이기 보다는 성실하며 일관된 사람일 뿐이다. 예상하건데 나는 박사학위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지만 그 학위논문의 수준이 우수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논문이 아예 학술적인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우리나라에서의 과학철학 논의에 기여하는 논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박사학위를 받고, 1년에 1편 이상 학술논문을 쓰고, 1년에 1권 이상 과학철학 관련 도서를 번역한다면, 비록 내가 대학이 아니라 과학관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우리나라 과학철학의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 셈이 될 것이다. 과학관에서도 특출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근무를 한다면, 만 60세를 정년의 기준으로 볼 때 대략 25년 정도 국립대구과학관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대구과학관 입사 전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했던 5년 6개월은 공직생활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아원 1년, 유치원 1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대학원 4년, 도합 22년 동안 공부했다. 3년 4개월 동안 군대에서, 5년 6개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지금까지 3년 9개월 동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도합 12년 7개월 동안 일했다. 앞으로 20년 더 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32년 7개월 정도 일하게 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뛰어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특별하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마도 그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나의 부모님,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 나의 가족들이 나의 운명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운명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 감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