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생명과학통론 독서노트 09

강형구 2016. 12. 6. 06:59

 

John Maynard Smith & Eörs Szathmáry(2000), The Origins of Life: From the Birth of Life to the Origin of Language(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Chapter 8: Genetic conflict & Chapter 9: Living together, pp. 95-107.  

 

   지난 7장에서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성의 기원문제를 다루었다. 암수로의 분화는 결과적으로 생명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득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러 유전자들이 결합해서 평화적인 공존을 이룬 것처럼 보여도, 속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유전자들 사이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생명의 기원들8장에서 그와 같은 유전자 분쟁을 다룬다.

  

   유기체의 게놈(genome)에는 수천 개의 유전자들이 있고, 이 유전자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서로 협동하도록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생명에게 성(, sex)이 없다면 세포 내의 유전자들은 수직적으로 전달될 것이고, 세포는 이기적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억제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 유성 생식할 경우, 무성 생식과는 달리 유전자가 세포 사이를 수평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들 사이의 내적 분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없다.

  

   유성 생식에서는 감수분열(meiosis)이 일어나는데, 이 경우 대개 한 자리(locus)에 있는 한 쌍의 서로 다른 유전자들(Aa)이 후손에게 전달될 확률은 동일하다. 하지만 분리방해자(segregation distorter)’ 유전자의 경우, 다른 유전자의 전달을 방해해서 자신이 후손에게 전달될 확률을 95%까지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웅동체(hermaphrodite) 식물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수컷 불임’(male sterility)을 야기하고,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핵 내 염색체의 다른 유전자들이 억제한다는 사실은 앞선 논의에서 살펴본 바 있다.

  

   염색체의 형성 이후 모든 유전자들이 염색체 단위로 복제하게 된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들은 염색체와는 별도로 자신이 속한 염색체와는 다른 염색체에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러한 복제가 일어날 경우, 해당 유전자는 반 수 이상의 후손들에게 자신을 물려줄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염색체 DNA 총량의 반 이상을 이와 같은 위치 전환 가능한(transposable) 유전자들이 차지하지만, 정작 이 유전자들은 유기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 염색체는 마치 이 유전자들이 보존증식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체 내에서의 분쟁 뿐만 아니라 부모-자손 사이에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1974년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유전적으로 서로 관련된 개체들사이에 가능한 유전자 갈등을 탐구했다. 부모에게서 자손으로 오직 절반의 확률로만 유전자가 전달되므로, 부모와 자손 모두 자손의 생존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둘 사이에서는 그러한 바람의 정도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아이는 어미로부터 젖 떼는 시기를 최대한 늘리려고 하지만(2), 어미는 또 다른 미래의 아이를 위해 이 시기를 18개월 정도로 줄이려고 한다. 데이빗 해익(David Haig) 등의 연구로 인해 지금까지 임신(pregnancy)’과 관련해서 잘 설명되지 않던 현상들을 어미-태아 분쟁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임신 기간에 간혹 임산부의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pre-eclampsia)가 있는데, 혈압 상승은 태아의 영양 공급에는 이롭지만 임산부의 건강에 위협을 미칠 수 있다

 

    그토록 유전자들 사이에서의 갈등이 많다면 어떻게 지금껏 유기체들이 갈등하는 유전자들을 포함하며 존속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개체 내의 다른 유전자들이 이기적 유전자들을 억제해왔을 것이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들은 대개 결핍되고(deficient) 기생적인(parasite) 요소들과 관련됨으로써 그 복제 능력이 감소되었을 것이다. 유기체 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숙주를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것이 유전자에게도 더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는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제한하는 기제들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개체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의 선택의 작용 또한 이기적 요소들의 억제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8장에서 유전자와 개체 사이의 분쟁을 다루었다면, 9장에서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생명들에서 볼 수 있는 함께 살기의 모습들을 다룬다. 복잡한 유기체는 세포들 사이의 노동 분업에 의존한다. 동물의 경우에는 동일한 유전자들을 갖고 있는 세포들이 서로 다른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분화되는 반면, 식물은 서로 다른 유전자들을 갖고 있는 개체들(, 미토콘드리아, 엽록체)이 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명의 세계에서는 식물에게서 볼 수 있는 공생(symbiosis)’ 현상을 여럿 살펴볼 수 있다. 공생은 생명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진딧물(aphid) 안의 박테리아는 진딧물에게 필요한 비타민을 합성해준다. 이와 같이 많은 경우 공생체가 숙주로서는 불가능한 화학 합성을 함으로써 공생체와 숙주 사이의 공생 관계가 성립한다. 심해 배출구(vent) 근처에서는 황으로 신진대사를 하는(sulphur-metabolizing) 박테리아와 숙주 사이의 공생을 찾아볼 수 있다. 브리트니 해변에서 볼 수 있는 편형동물인 콘볼루타(Convoluta)’ 안에는 광합성을 하는 녹조류가 살고 있고, 녹조류는 콘볼루타가 배출하는 유기화합물을 섭취하며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균근(mycorrhiza)’은 균류와 식물 뿌리가 공생을 이루어 형성된다. 균근에서는 균류로부터 식물로 미네랄이 이동하고 식물에서 균류로 유기합성물이 옮겨가므로, 이는 상호 간 이득이 되는 공생이라 할 수 있다. 균류와 잎 자르는 개미 사이의 공생도 있다. 개미가 잎을 잘라 균류에게 갖다 주면, 균류는 이를 소화해서 개미에게 필요한 양분을 제공해준다.

  

   이와 같은 공생의 관계는 어떻게 진화해 온 것일까? 르네 듀보(Rene Dubos)1965년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생체는 숙주에게 크게 해롭지 않게 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숙주에게 치명적인 기생체들(장티푸스 유발 바이러스)이 있고, 숙주에 따라 기생체의 치명성 정도가 다른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편리공생이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진화 과정)를 세부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숙주 유기체는 기생체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고, 기생체는 숙주를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특히 기생체의 전이(transmission)가 수직적인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우, 기생체의 입장에서도 숙주가 살아남아 번성하는 것이 유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평적 전이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상호적 공생이 가능하다. 토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점액종(myxoma)’ 바이러스를 예로 들어 보자. 한 때 이 바이러스는 감염 후 몇 주 만에 토끼를 죽였다. 하지만 현재 이 바이러스로 인해 토끼가 죽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감염된 토끼가 죽는다고 해도 몇 달이 걸린다. 이는 토끼의 저항력이 증가해 온 것과 더불어 바이러스도 토끼에게 덜 위험해지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상호 호혜적 공생에서 공생자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특징은, 공생을 통해 공생자가 무성적(asexual)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공생자는 숙주 내의 편안한 환경 때문에 성을 진화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변이의 부담을 덜기보다는 진화를 촉진하기 위해 성이 발달되었다는 가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마지막으로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진화에서 공생의 역할을 과장하려는 입장을 경고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공생이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긴 했지만 공생이 자연 선택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개체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복잡한 협동은 공생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 사이에서의 분화를 통해서 일어나며, 이는 공생보다는 자연 선택이 진화에서 핵심적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논평 및 질문] 8장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는 대립 형질 유전자에 관한 물음이다. 완두콩에 대한 멘델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와 그 표현형은 11로 대응되지 않는다. 개체의 표현형이 개체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가정해보자. 유성 생식의 특성상 후손은 부모와는 다른 표현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표현형의 차이로 인해 부모와 후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왜 굳이 염색체는 유기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위치 전환 가능한 유전자들을 그렇게 많이 포함하고 있을까? 이 유전자들이 이후 유기체에게 쓸모 있게변이될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유기체들은 미래의 진화를 위해서 쓸모없는유전자들을 애써 데리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9장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자연 선택공생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생각해보았다. 마굴리스는 공생자 행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 나는 세포보다 더 큰 생물들과 그들의 새로운 기관과 새로운 기관계 역시 공생 발생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개념을 확장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71).” 정말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의 말처럼 생명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복잡한 협동은 공생이 아닌 자연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일까?

  

   아마 마굴리스도 자연 선택을 통한 분화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의 결정적인 지점들에 공생을 놓는 것과 놓지 않는 것은 생명의 역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기관과 기관계 진화에 관한 공생중심적인 설명과 자연 선택중심적인 설명을 비교분석해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