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물리학의 철학 독서노트 07

강형구 2016. 9. 9. 07:01

 

스클라(Sklar),물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hysics), 92-108.

  

확률에 대한 철학자들의 입장들과 통계적 설명

  

   확률에 대한 형식 이론: 곧바로 이어지는 시행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행을 통해 그 속에서의 규칙성을 찾아낼 수는 있다. 확률에 대한 형식 이론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확률 이론을 물리학에 적용할 경우, 기본적인 결과의 수가 무한히 많은 경우를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고, 불가능하지 않은 사건의 확률이 0이 되는 경우도 발생함을 알 수 있다.

  

   확률 이론에서는 조건부확률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A가 주어졌을 때 B가 발생할 확률을 P(B/A)라고 하자. 만약 P(B/A)=P(B)라면, AB는 확률적으로 상호 독립이라 말한다. 확률 이론의 기초적인 공준들로부터 중요한 일군의 정리들이 증명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큰 수의 법칙이다. 큰 수의 법칙이란, 시행이 무수히 많아질수록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상대 빈도가 하나의 단일한 값으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행들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확률에 대한 객관적 해석: 그렇다면 확률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확률이란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것인가? 확률이란 무한한 시행을 했을 경우의 상대 빈도 아닌가?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의 시행 횟수는 항상 유한하기 때문에, 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또한 무한번 시행을 한다고 해서 상대 빈도의 값과 확률값이 같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해 상향 혹은 하향 추론의 규칙에 의해서 실제 사건들의 확률이 상대 빈도와 연관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일반화들의 구조 속에서 기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장들에 빈도 혹은 비율로 부여된 이상화된 특성들이 확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 의하면, 확률이란 기초적인 일반화들의 수준에서 세계의 일반적인 구조를 표상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상화된 단순 비율의 한 종류이다. 확률이란 그 결과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사물, 또는 그 사물을 포함하고 있는 과정의 한 측면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 확률이란 사물 또는 과정이 갖고 있는 성향적 크기라는 것이다.

  

   하나의 단일 사건에 속하는 확률의 정도를 결정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또한 확률에는 무작위성의 문제도 있다. 무작위적인 계열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폰 미제스와 처치의 경우, 원래의 계열에서 기계적 절차에 의해 선택된 어떠한 부분 계열의 상대 빈도도 서로 같다면, 해당 계열을 무작위적 계열이라고 정의하려고 했다. 확률값이 0인 계열들이 무작위적 계열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실제 일어난 실험 결과들의 계열을 산출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한다고 했을 경우, 프로그램의 작성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계열은 무작위적 계열에 가깝다고 보려는 입장도 있다.

  

   확률에 대한 주관적 해석: 확률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확률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해 우리가 갖는 확신의 정도에 대한 측도라고 생각한다. , 확률이란 부분적 신념의 측도라는 것이다. 주관주의자들에게 있어 확률이란 행위자들이 갖는 부분적인 믿음의 정도이며, 불확실한 세계에서 행위자들의 행위와 믿음들을 인도하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증거들에 직면했을 경우 확률을 변경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해 주관주의자들은 새로운 증거들에 입각해서 기존에 부여된 확률값들을 변경시켜나가는 절차인 조건화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사건에 대한 사전확률은 어떻게 부여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대칭적 사례들에게 동등한 확률값을 부여함으로써 (‘무관의 원리에 의거해서) 사전 확률을 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가능한 성과들을 대칭적 사례들로 구분하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 ‘무관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된다. 사건의 확률이 무엇이며, 사건의 초기 확률값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는 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통계적 설명- 설명, 법칙, 원인: ?”라는 물음에 대답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그 사건의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직관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 설명이란 발생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전히 여러 과학들에서(물리학에서조차도) ‘최종인과 유사한 원인들을 통해 설명을 제시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과학에서는 대개 효과인을 찾는다. 사전 사건으로부터 일종의 필연화 과정을 거쳐서 사후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말하는 필연화의 본성은 무엇인가?

  

   흄에 의하면 원인과 결과 사이를 이어주는 인과적 고리라는 것은 없으며, 인과관계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의 항상적 연접에 불과하다. 필연성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의 심리적 현상을 세계에 투영함으로부터 비롯된다. , 필연화는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헴펠의 연역법칙적 모형은 이와 같은 흄의 견해와 상당히 합치한다. 연역법칙적 모형에서의 사전 조건항들이 법칙의 필연화 과정을 통해 피설명항의 사건들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형에 따르면 사전 조건항들과 법칙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법칙이 말하는 필연화 과정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 인과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제대로 된 인과란 무엇인가? 인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적 연결 이외의 어떠한 인과적 요소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일까?

  

   설명은 확률을 필요로 한다: 전건과 후건 사이에 엄격한 일반법칙 관계가 아닌 확률법칙 관계가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사전 사건과 사후 확률이 높은 확률로 연관되어야 하는 것일까? 높은 확률로 사전 사건과 사후 확률이 연관될 경우, 사후 사건이 사전 사건으로부터 확실하게 도출된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또한, 설명항에 추가적인 정보가 주어지면 확률값이 바뀔 여지도 존재한다. 문제는, 여전히 발생확률이 낮다고 하더라도 설명이 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있고,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을 경우 확률값이 더 낮아지는 사례도 있다는 데 있다.

  

   인과를 확률적 연결로 생각할 경우, 하나의 원인이 복수의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인과적인 상관관계와 비인과적 상관관계를 구분할 필요성도 생긴다. 하지만 인과에 확률 개념을 도입한다고 해서 세계에 환원불가능한 확률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과에 확률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세계에 대한 결정론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인과적 연쇄를 통해 사전 사건으로부터 사후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보일 수 있다면, 굳이 사후 사건이 벌어질 확률이 증가해야 함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과연 인과 그 자체는 무엇인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과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라는 칸트 식의 답변을 제시할 수도 있다.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어떤 사건을 제거했을 때 설명하고자 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을 보임으로써 해당 사건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흄식의 항상적 연결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도, 이론적 구조 내에서 완전히 법칙적인 규칙성과 단순히 확률적인 규칙성이 위계화된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 단순한 상관관계와 인과적 상관관계가 위계화될 수 있으며, 전자는 후자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열역학과 통계역학 사이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열역학에서 등장하는 거시적 규모의 표층 이론이 통계역학에서 등장하는 미시적 규모의 심층 이론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설명과 환원: 법칙적 일반화들은 그것들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오하며 근본적인 일반화들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 높은 수준의 법칙들로부터 낮은 수준의 법칙들이 도출된다. 이 때 낮은 수준의 표층적인 법칙들은 참이 아니라 근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심층 원리들로부터 표층 수준의 통계적 일반화들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가? 이는 이론간 환원의 문제와 연관되는데, 환원이라는 문제는 그다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또한 양자역학의 경우, 심층적인 통계적 법칙들로부터 표층적인 결정론적 법칙들이 유도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결정론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법칙들에 통계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근본적인 물리 법칙들에 확률적 요소를 도입하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논평: 이 부분은 저자인 스클라가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한 예비적인 설명을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러한 예비적 설명들 하나하나에 기존에 이루어진 과학철학적 논의들의 성과가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과학적 진술들에 등장하는 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문제는 1930년대부터 과학철학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어 온 주제들 중 하나이다. 라이헨바흐와 폰 미제스, 카르납 등은 확률을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세부적인 견해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경제학자들 또한 확률의 개념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그들은 확률을 주관주의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확률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 이후, 스클라는 또 다른 중요한 과학철학적 주제들인 설명인과를 논의한다. 대개 우리는 인과를 법칙과 연계시켜서 이해하는데, 흄이 법칙의 필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후 과연 법칙에 등장하는 필연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더구나 법칙에는 보편법칙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법칙도 존재한다. 보편법칙에서의 필연성과 확률법칙의 필연성은 서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같은 종류의 것인가? 법칙들에도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면, 근본적인 법칙들은 늘 보편법칙의 형태를 띠고 이러한 근본법칙들로부터 표층적인 확률법칙들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때 근본법칙들과 확률법칙들을 적합하게 연결하는 기준이나 조건은 무엇일까? 정말 근본적인 법칙들은 늘 보편법칙의 형태를 띠는 것일까? 양자역학을 살펴볼 경우, 근본적인 법칙들 그 자체가 확률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은가? 어찌보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는 모든 법칙들은 기본적으로 확률적인 법칙들이 아닐까? 이러한 여러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과학철학의 중요한 주제인 환원의 문제와 연결된다.

  

   ‘설명’, ‘인과’, ‘환원등과 같은 주제들은 과학철학의 일반적인 주제들임과 동시에 물리학의 철학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저자인 스클라는 과학철학의 일반적인 주제들을 특수 과학의 철학과 어떻게 연결시켜 논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실재론/반실재론 논의와 연결시켰던 이전까지의 논의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동시에 스클라는 역사적인 접근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서술방식은 장점과 약점을 모두 갖는다. 과학철학 일반의 논의들과 물리학사를 모두 적절한 수준에서 다루고 있음은 높게 평가할만 하지만, 이에 따라 과학철학과 물리학사 모두를 너무 간략하게 다룸으로써 과학철학과 물리학사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들이 갖는 깊이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에 대해서는, 물리학의 철학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토레티의 책이 좋은 보충이 된다. 또한 좀 더 깊고 넓은 과학철학적 논의가 필요할 경우 스클라 본인이 저술한 책들을(시공간과 확률에 관한 별도의 단행본들) 참고하면 좋다. 토레티 책의 경우 20세기 과학철학 논의들의 성과들을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반면, 스클라의 이 책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의 성과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클라의 책이 토레티의 책에 비해 더 전형적인물리철학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