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물리학의 철학 독서노트 06

강형구 2016. 9. 8. 06:57

 

코소(Kosso),현상과 실재(Appearance and Reality), 94-109.

  

   두 가지 구분되는 질문들: 우리는 상대성이론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혹은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물음을 구분해야 한다.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 상대성이론은 자연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기술한다. , 상대성이론은 현상이 아닌 실재를 기술한다. 상대성이론의 개념적 기초는 물리 법칙의 절대적인 특성들과 빛의 속도의 절대성이다. 상대성이론의 기본 뼈대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인 간격이 불변한다.

  

   물론 상대성이론에서의 몇몇 특성들은 상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특성들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상대성이론에서의 상대적인 특성들은 인간과 무관하며 계의 운동 상태와만 관련된다. 길이 수축, 동시성의 상대성, 질량의 변화 등은 관찰이나 측정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우리는 길이나 동시성이 절대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빛의 속도가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의 획득이 가능한데, 이는 특정한 관찰자의 관점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를 인지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한 이론이 참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특수 상대성이론은 경험적으로 잘 입증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에 비해 직접적인 방식의 경험적 입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시공간의 곡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공간적 거리와 시간의 지속을 측정한다. 물리적 기하학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제시하는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시공간의 곡률 이외의 별도의 힘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을 물리적 기하학으로 유지할 경우 우리는 보편력을 도입해야 하며, 이는 임시방편적인 성격을 가진 힘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상대적인 우위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지점에서 규약의 문제가 발생한다. 보편력을 도입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문제는 규약적인 것이다. 동시성을 정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방향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고 전제하는데, 이 전제도 규약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규약적 요소가 포함된다고 해도 자연에 대한 기술의 본성이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규약이 한 번 정해지고 나면, 우리는 무엇이 옳은 답이고 무엇이 그른 답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규약성이 자연의 사실들을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지는 않는다. 처음에 우리가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를 선정하고 난 뒤에는, 우리의 언어가 아닌 자연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를 지시해준다. 우리는 자연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를 선택하는 것이지, 자연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클라(Sklar),물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hysics), 69-90.

  

   시간과 존재: 과연 미래를 현재나 과거만큼 실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공간은 관점과 무관하지만 시간은 관점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시간의 존재성은 오래 전부터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 왔는데, 이에 대해서 상대성이론은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주고 있는 것일까?

  

   상대론적인 고려들: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지금이라는 표현의 뜻도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개별 관찰자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일 따름이다. 과거나 미래는 현재처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추론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현재와 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관찰자로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의 실재성만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라면, 이는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강한 반실재론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실체론 대 관계론: 실체론 대 관계론의 논쟁에서 상대성이론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상대성이론이 전적으로 관계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경우,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 간격은 절대적이다. 또한 등속 운동과 가속 운동의 절대적 구분이 특수 상대성이론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특수 상대성이론이 실체론적 관점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 시공간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물체들 사이에서의 상대적인 운동을 통해서 가속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론자들은 특정한 관측계가 관성계로 선호된다는 사실로부터 시공간이 실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관계론자들은 그러한 경향은 단지 자연의 확고한 사실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사실으로부터 실체로서의 시공간을 추론할 수는 없다고 대응한다.

  

   마흐의 제안과 일반 상대성이론: 가속도는 멀리 떨어져 있는 큰 질량을 가진 천체들과 해당 물체 사이에서의 상대적 운동 때문에 생성된다는 것이 마흐의 제안이었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마흐의 관점과 상당부분 합치한다. 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정지하고 있던 입자 주변에 큰 질량을 가진 물체들이 회전할 경우, 그 물체들이 정지한 상태에서 그 주변을 해당 입자가 회전할 때 입자가 받는 힘과 같은 종류의 힘을, 원래 정지하고 있었던 입자가 받게 됨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도 절대 회전과 그렇지 않은 회전을 구분할 수 있다. 질량과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시공간은 편평하며 민코프스키 시공간이 적용되는데, 이 곳에서는 회전과 비회전이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의 곡률 자체가 자가(self)에너지를 갖고 있어, 텅 빈 우주에서도 0이 아닌 곡률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구나 괴델이 제시한 가능세계에서는, 관측자가 자신이 속한 세계가 회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절대적으로 따질 수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의 추가적인 귀결들 및 실체론자와 관계론자 사이의 관계: 시공간 그 자체가 물질-에너지라면, 시공간 그 자체와 물질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실제로 물리학에 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부터 실체론-관계론 논쟁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에 비추어서 결정론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세계의 상태개념과 자연 법칙의 개념을 조금만 엄격하게 설정해도, 뉴턴 역학에서의 결정론은 난점에 부딪친다. 더군다나 상대론에서는 특정 순간에 세계의 모든 곳에서의 상태라는 개념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경우, 주어진 시각에 세계의 모든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세계는 결정론적이면서도 예측 불가능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등장하는 특이점(블랙홀 등)에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정론이 붕괴한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시공간의 구조가 달라지며, 특히 구멍 문제의 경우,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시공 영역이 있다고 할 때 그 영역의 시공 구조는 주변 물질들의 분포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결정론에 대한 반례라고 볼 수 있다.

  

   시공간적 관계와 인과적 관계: 세계의 시공간 구조와 사건들 사이의 인과적 구조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시공간적 관계는 인과적 관계로 환원되는 것 아닌가? 동시성은 인과적 연결가능성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 동시성이란 실제의 관계가 아니라 규약 또는 조작이기 때문에 위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랍(Robb)은 동시성 뿐만 아니라 공간적 분리, 시간적 분리 또한 인과적 연결가능성이란 개념으로 정의해냈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그의 정의가 완전히 들어맞지 못함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시공간적 관계는 인과적 관계로 환원될 수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위상학과 인과적 구조: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적 계량 관계가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더라도 사건들 사이의 인과적 관계의 구조는 같을 수 있다. 따라서 계량에 대한 인과적 정의는 불가능하며, 인과적 구조와 더불어 이상화된 자유 물질 입자의 궤적이 포함되어야만 시공간의 계량 구조를 완전하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공간의 계량적 구조보다는 다소 약한 개념인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는 인과적 구조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특정한 경우에만 (물체가 인과적으로 적합하게 행동하는 시공간의 경우에서만)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는 인과적 연결가능성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과적 연결가능성의 개념을 다소 느슨하게 하면, 두 시공간이 있을 때 두 시공간에서의 연속적인 인과적 경로가 정확히 같을 경우 두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시공간적 측면들은 인과적 측면들로 환원되는가? 우리는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을 실제적인 사건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직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과라는 기준을 통해서 시공간에 있어서의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규약적인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전에 제시한 느슨한 인과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시공간의 위상학적 성질들은 인과적 성질들에로 환원되므로, 이 성질들은 세계에 대한 (규약적인 것이 아닌) 참된 사실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느슨한 인과 개념에서는 핵심적인 것은 인과적 사실이 아니라 시공간적 사실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시공간의 질서는 인과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적 접근을 진정으로 허용하는, 제한된 시공간적 사실들에로 환원된다고 할 수 있다.

  

   논평: 코소는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것이 실재인가 현상인가, 상대성이론은 어떤 의미에서 옳은가라는 비교적 단순화된 두 물음을 갖고 논의를 평이하게 전개하고 있는 반면, 스클라의 경우 상대성이론의 결과를 토대로 실체론-관계론 논쟁, 세계에 대한 결정론의 문제, 시공간의 관계가 인과적 관계로 환원되는지의 문제 등과 같은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 나는 주로 스클라의 논의에 대해 논평을 하고자 한다.

  

   시공간의 곡률이 시공간의 물질 분포에 영향을 받아서 결정된다는 것은 일반 상대성이론의 핵심에 속한다. 하지만 왜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공간이 0의 곡률을 갖지 않는 것일까? 질량이 시공간의 곡률을 형성하고 시공간의 곡률이 질량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질량과 시공간은 엄격하게 분리할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왜 상대성이론은 질량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에서도 시공간의 곡률이 0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 시공간에서의 곡률을 결정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추론을 통해서 그러한 곡률에 도달하는가?

  

   미소 영역에서 특수 상대성이론이 유효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일반 상대성이론의 중요한 가정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미소 영역에서 가속 운동과 등속 운동이 구분된다고 해서 이 구분이 전면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실체주의자의 주장은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괴델의 가능 세계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전반적으로 볼 때 상대성이론이 공간에 대한 관계론적 입장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인과적 구조와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 사이의 관련성 또한 시간과 공간의 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시공간에 관한 특정 사실들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인과적 관계만으로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를 정의할 수 있을까? 과연 시공간의 사실들을 참조하지 않으면서도 시공간의 위상적 구조를 정의하기에 적합한 순수한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