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파이어아벤트, [설명, 환원, 경험주의]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7. 28. 06:54

 

 

2. ‘환원혹은 도출(유도, derivation)에 의한 설명에 대한 비판

 

  

용어 정의

T' : 설명되어야 하는 규칙성들(regularities) 혹은 사실들(facts)의 총체

T : 설명의 기초로서 기능하는 이론

D' : T'가 올바른 예측들을 제공하는 영역

D : 이론 T가 상정하는 영역 (이 때, D'D)

 

  

새로운 이론(혹은 설명)의 조건

  

조건 1 : 해당 영역에서 기존까지 사용되어지고 있던 이론들을 포함하거나, 적어도 이러한 기존 이론들과 정합적인(consistent) 이론들만이 허용된다.

  

   위와 같은 조건 1은 논리경험주의자들(대표적으로 헴펠Hempel)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들(마흐Mach)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양자역학적 현상에 대한 예측은 거시적 규모에서 고전물리학의 예측 결과와 합치해야 한다는 원리를 물리학자들(란다우Landau, 리프쉿츠Lifshitz, 슈뢰딩거Schroedinger, Bohm, 드브로이de Broglie, 비기어Vigier )이 사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조건 1의 광범위한 수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과학적 설명들이 조건 1을 만족하지 못한다. 조건 1은 경험적인 근거에 의해서도 지지되지 못하며, 조건 1을 유지할 경우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한다.

 

3. 조건 1을 만족하지 못하는 첫 번째 사례 : 갈릴레오와 뉴턴의 물리학

  

   갈릴레오의 물리학을 T', 뉴턴의 물리학을 T, 영역 D'에서도 타당한 영역 D의 조건들을 d라고 할 때, ‘갈릴레오의 물리학이 뉴턴의 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T & d T' 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H를 지면으로부터의 물체의 높이, R을 지구의 반지름이라 할 때, H/R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값을 갖는다면 T'T & d로부터 연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갈릴레오의 물리학은 뉴턴의 물리학으로부터 연역되지 않는다. 또한 전자와 후자를 양립 가능하게 만들 수도 없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근사적으로 같음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주관적 요소이며 형식화된 환원 이론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4. 조건 1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유 : 동일한 관측 자료가 서로 다른(different), 상호 비일관적인(mutually inconsistent) 이론들과 양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거 1 : 이론들은 보편적(universal)이다. 따라서 이론들이 주장하는 영역은 특정한 시각에 허용가능한 관측들의 집합이 갖는 영역을 넘어선다.

  

근거 2 : 특정한 관찰 진술의 옳고 그름은 특정한 오차의 범위 내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근거로 인해서 우리는 이론을 구성할 때 상당한 자유를 갖게 된다. 이론 구성은 개인의 특성(idiosyncrasy) 혹은 형이상학적 믿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론 선택은 미적 동기(aesthetic motive)에 의해서도 영향 받을 수 있다(갈릴레오는 원궤도에 대한 믿음에서 케플러의 타원 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결같이 주관적(subjective)이다.

  

   사실들의 미결정성을 통해 보장되는 이론화의 자유는 방법론적으로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 하나의 이론을 다른 이론으로 환원시키려 할 경우,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주 협소한 경험적 내용만을 갖게 될 것이며 이는 경험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험적 증거들은 순수하고 단순한 사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들은 특정한 이론에 따라서 분석되고, 모형화되고, 제조된다(manufactured). 새로운 이론 T의 도입은 빈번하게 기존 이론 T'을 지지했던 증거를 개조하는(recast) 결과를 빚어낸다. 만약 우리가 조건 1을 철저히 만족시키려 할 경우 새롭거나 더 정교해진 측정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이는 경험주의의 입장(이론의 경험적 내용을 최대한 풍부하게 하려는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5. 조건 1을 만족하지 못하는 두 번째 사례 : 운동의 문제

  

   갈릴레오의 운동 이론 :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을 변형한 운동 이론. 임페투스(impetus) 이론. 투사체의 경우 운동자(사람 혹은 대포 등)와의 접촉 이후에도 투사체가 계속 운동할 수 있는 것은 운동자가 투사체에게 내적 추동력(임페투스)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 추동력은 공기의 저항과 중력의 작용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임페투스의 원리 : 진공에서의 한 물체가 외부적 영향을 받지 않을 경우, 그 물체의 임페투스는 불변한다.

  

   하지만 위의 원리는 뉴턴의 이론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갈릴레오의 임페투스를 뉴턴의 모멘텀(momentum)과 같다고 볼 수 없다. 임페투스 이론과 뉴턴 이론에서 말하는 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며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다. 뉴턴 이론에서 사용되는 기술적 용어들을 통해 임페투스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임페투스는 뉴턴 이론의 원초적 이론 용어들을 통해 해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임페투스=모멘텀을 지지하는 물질적 혹은 물리적 가설을 도입한 후, 뉴턴 이론에 특정한 조건들을 부과할 경우 임페투스의 모든 특성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네이글이 제시하는 환원의 두 번째 방법). 하지만 임페투스=모멘텀을 지지하는 어떠한 물질적 혹은 물리적 가설도 뉴턴의 이론과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도는 실패한다.

  

   제한된 이론 T'에서 좀 더 광범위한 이론 T로의 이행이 일어날 경우, 이론 T'가 자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T 안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론 T'의 존재론이 이론 T의 존재론으로 완전히 대체되며, 이에 따라서 이론 T'가 갖고 있던 모든 기술적 용어들의 의미들 또한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