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토레티, [기하학의 철학] 요약 정리 01

강형구 2016. 7. 29. 06:50

 

 

서문(Preface)

 

  

   이 책은 4장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과학과 철학에 대한 배경 정보를 제공한다. 2장에서는 1871년에서 73년 사이에 출판된 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의 논문이른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하여가 나오기 이전까지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 과정을 기술한다. 3장에서는 19세기에 이루어진 기하학의 기초에 대한 탐구를 다룬다. 4장에서는 존 스튜어트 밀부터 앙리 푸앵카레에까지 이르는, 기하학적 지식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에 대해서 논한다.

 

1: 배경지식(Background)

 

  

1.0.1. 그리스의 기하학과 철학

  

   그리스의 기하학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의 실용적 기하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추론의 사슬을 통한 논증적(argumentative) 기하학은 오직 그리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우리는 기원전 600년 경, 밀레투스의 탈레스의 마음 속에서 철학과 기하학이 동시에 탄생했다고 소박하게 추측해볼 수 있겠다.

  

   탈레스는 기하학적 논증을 할 때 도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후의 기하학자들은 도형을 통해 표현되는 선이나 점들의 성질에 의존하지 않는, 오직 해당되는 논증을 구성하는 문장들에 포함되어 있는 단어들의 뜻을 이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증명의 방법을 개발한다. 이러한 증명의 특성은 유클리드의 원론 제 9권의 21~34번 명제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짝수의 곱은 짝수, 홀수의 짝수 곱은 짝수 등에 대한 증명). 이러한 증명이 부분적으로 단순한 기하학적 도식에 의존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 기하학은 기본적으로 추론(reasoning)에 근거한다. 그리스 기하학이 추론적이지 않았다면 그리스 기하학자들은 공약불가능한 크기(incommensurable magnitude)’ 개념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 정사각형의 대각선이 서로 공약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원전 5세기 후반부에 발견했다. 직관에 반하는 이러한 발견 이후, 그리스 기하학자들은 엄격하게 증명된 진술들만 받아들이게 된다. 어떠한 추론도 특정한 전제들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몇몇 전제들을 증명 없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무한퇴행에 빠지게 된다. 플라톤은 그의국가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 의하면 기하학과 수학은 그 학문들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들(hupotheseis)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학문(epistemai)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 대해 플라톤보다 더 명쾌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법에 의하면, 학문(science, episteme)은 증명(demonstration, apodeixis)에 의한 지식이다. 그런데 학문은 이성(Nous, intellect, rational intuition)에 의한 지식에 종속된다.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참되고 필연적이며 보편적인 명제들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공리(axiomata)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모든 학문들에 공통되는 원리이며(대표적으로 모순율을 들 수 있다), 주제(theses)란 개별 학문에 적합한 원리이다. 주제는 가설(hupotheseis)의 한 종류로 분류되며, 가설이란 어떤 것의 존재함 혹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진술이다. 정의(horismoi)란 어떤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진술이다. 정의에서도 무한퇴행과 악순환을 용납할 수 없는 까닭에, 모든 연역적 과학에는 정의되지 않은 원초적 용어들이 등장한다.

  

   유클리드의 용어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는 다소 다르다.원론1권은 정의(horoi, definition), 공준(aitemata), 공통개념(koinai ennoiai)이라 분류되는 세 종류의 일련의 가정들로부터 시작한다. 유클리드의 horoi(정의)를 아리스토텔레스의 horismoi(정의), 유클리드의 koinai ennoiai(공통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axiomata(공리), 유클리드의 aitemata(공준)을 아리스토텔레스의 hupotheseis(가설)과 대응시켜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두 학자의 용어들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horismoi(정의)는 무엇이 어떠한 것임을 말할 뿐 그것의 존재함을 주장하지는 않는 반면, 유클리드는 그의 horoi(정의)들을 마치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axiomata와 유클리드의 koinai ennoiai(‘같은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서로 같다)는 서로 유사하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이 당시 기하학자들의 성과와 용어들에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가 있으며, 유클리드의 책 또한 이전까지의 기하학적 성과들을 집대성한 것이기 때문에, 유클리드의 용어가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에 의거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클리드의 5가지 aitemata(공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한 점에서 다른 한 점까지 직선을 그을 수 있다. 둘째, 직선을 연속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 셋째, 원은 중심과 그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로써 기술할 수 있다. 넷째, 모든 직각들은 서로에 대해 동등하다. 다섯째, 한 직선이 서로 다른 두 직선과 만나고 이 때 같은 편에 있는 각각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다면, 두 직선이 무한히 연장될 경우 두 직선은 서로 만난다. 개별 학문에서 특정한 사물의 존재에 대해 자명하다고 받아들이는 진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hupothesis(가설)과 유클리드의 aitema(공준)을 동일하게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처음 세 공준들은 존재함이 아닌 가능성만을 말하고 있다. 공준이 말하는 기하학적 도형이 구성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곧 그것의 존재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클리드의 제 5공준은 유클리드 당시에도 그 자명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비록 유클리드가 그의 koinai ennoiai(공통개념)을 참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공준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클리드 공준들 중 일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적 체계와 합치하지도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한한 우주에서는 두 번째 공준이 성립하지 않으며, 그의 유한한 우주에서는 모든 점이 임의의 반지름을 같는 원의 중심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기하학자들은 기하학의 기본 전제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1.0.2. 그리스 자연과학에서의 기하학

  

   사모스의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6세기에 단순한 정수 비율의 현들이 화음을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발견에 용기를 얻은 피타고라스 학파는 자연적 과정과 수들 사이의 대응관계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이러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산술적 물리학(arithmetical physics)은 히파수스가 공약불가능한 수를 발견함으로써 중단된다. 이성적으로는 증명되지만 경험적으로는 입증될 수 없는 이 결과로 인해 자연에서의 수리적 관계를 탐구하려는 연구가 멈추었던 것이다. 이후 피타고라스 학파는 산술이 아닌 기하학을 통해 물체와 그 운동에 대한 탐구를 수행한다.

  

   그리스 수학에서는, 서로 공약불가능한 경우에도 두 개의 기하학적 크기를 정확하게 상호 비교할 수 있는 개념적 토대(플라톤의 동시대인인 에우독소스가 개발한 방법)를 구축했다.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ab보다 작거나 같고, kab보다 크게끔 만들어주는 양의 정수 k가 존재한다고 하자. 그리고 a', b'이 있어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한다고 하자.

  

ma'<nb'이면 항상 ma<nb. ma'=mb'이면 항상 ma=mb. ma'>nb'이면 항상 ma>nb.

  

   이 경우 a에 대한 b의 비율은 a'에 대한 b'의 비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ma>nb이지만 ma'nb'인 경우가 있다면 a에 대한 b의 비율은 a'에 대한 b'의 비율보다 더 크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어떠한 두 개의 균질적인(homogeneous) 크기들에 대해서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에우독소스의 비율법을 통해서 자연에 대한 수리과학을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의 비율법을 통해 그리스 수리천문학의 기초를 놓기도 했던 에우독소스는 기하학을 통해 물리적 탐구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 이후 아르키메데스 등은 정역학과 광학에서 유사한 공헌을 했다.

  

   에우독소스의 수리천문학은 이후 톨레미에 의해서 상당한 예측력을 획득하게 되지만, 이는 과거의 관측들로부터 미래의 천문 현상을 계산하는 역할을 했을 뿐 자연의 작용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왕성한 과학적 호기심과 뛰어난 과학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수리물리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데에는 플라톤의 영향이 컸다. 플라톤은국가에서 자연에 대한 수리과학의 가능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에 의하면 산술, 기하 다음으로 고체의 운동에 대한 과학인 천문학이 자리하는데, 운동에 대한 수리과학인 천문학은 실제로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물체로 이루어졌으며 눈에 보이는)과는 상관이 없다. 운동에 대한 순수하게 수학적인 이론에 대해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수한 수학 이론과 자연적 현상이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우독소스는 위와 같은 플라톤의 수학/천문학 구분을 따르지 않고 천체 운동에 대한 동심천구이론을 개발한다. 행성들은 지구와 중심을 공유하는 동심천구를 따라 균일하게 회전한다. 이 때 각각의 동심천구의 회전축 각도는 서로 다르며, 제일 바깥에 자리하고 있는 동심천구는 항성들의 겉보기 움직임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회전한다. 에우독소스의 모형에 따르면 태양과 달은 각각 세 개의 천구를 가지고,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과 토성은 각각 네 개의 천구를 갖는다. 그의 제자였던 칼리푸스는 관찰된 사실들과 합치시키기 위해서 태양과 달에 두 개의 천구들을 추가적으로 부여했다. 에우독소스의 천문학은 천상계의 자연과 지상계의 자연 사이의 완전한 분리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천상계의 물체들은 영혼을 갖고 있는 반면 우리 주변의 불활성적인 물체들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천구는 지구의 중심이라는 공통된 중심을 갖고, 각각의 행성에 대한 모형은 항성천구와 같은 비율로 회전하는 하나의 천구를 포함한다는 것이 에우독소스 이론의 핵심이었다.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결합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물, , , 공기의 네 가지 원소들은 각자의 본성을 토대로 움직이는데, 불과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땅과 물은 세계의 중심인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간다. 에테르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완전한 원운동을 한다. 지상계의 물체들은 4원소가 서로 다른 비율로 결합해서 구성되지만, 천상계의 물체들은 오직 에테르로만 구성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모형이 결합한 결과, 칼리푸스에 이르면 우주는 도합 49개의 천구로 구성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자연과학에는 정확한 수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물질로 이루어진 지상계의 현상들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변화하고, 이 경우 정확한 수학적 법칙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가장 적은 양의 물질을 포함한 에테르로 구성된 천상계의 경우는 수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이는 지상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수리천문학의 결합은 곧 붕괴되고 마는데, 왜냐하면 에우독소스의 천구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극점과 평분점 사이를 움직이는 태양의 운동이 일정하지 않다. 둘째, 행성의 밝기와 달의 겉보기 크기가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이는 행성과 달이 지구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첫 번째 사실은 동심천구를 추가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두 번째 사실은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이론과 양립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후 3세기에 이르면 천문학자들은 이심원(eccentric, 중심이 지구의 중심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원)과 주전원(epicycle, 원 주위를 회전하는 또다른 작은 원, 아폴로니우스가 도입)을 도입해서 이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히파르쿠스는 이심원을 통해 기술될 수 있는 행성의 궤적이 주전원을 통해서도 기술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더 나아가 모든 상상가능한 행성의 운동은 특정 오차 범위 안에서 주전운동을 통해 기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톨레미는 필요한 주전원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등각속도점(equant)를 도입하지만, 이는 일양적인 원운동이라는 플라톤의 교의(orthodoxy)와 어긋나는 것이었고 이는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주전원 천문학은 다양한 수학적 기법들을 발전시켰고 시간을 크기 혹은 연장된 양과 유사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이는 새롭고 더 정교화된 관측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 물리적 실재성을 띠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관해서 아베로에스(1126~1198)와 마이모니데스(1135~1204)는 당대의 천문학이 진정한 물리적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근대 이전까지 천문학은 운동학(kinematics)일 수는 있었을망정 동역학(dynamics)에 이르지는 못했다.

 

  

1.0.3. 근대 과학과 공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념

  

   케플러는 자연적 사물들과 사건들의 원인을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천문학이 물리학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물리학을 분리시키지 않았으며, 따라서 천상계 물체의 운동 원인을 지상계의 물체 운동을 토대로 탐구할 수 있다. 케플러는 기하학이 보편적 물리학에 이르는 열쇠라고 생각했으며, 현상에 대한 수학적 분석과 재구성만이 자연의 작동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항상 기하학화한다.” 갈릴레오 또한 기하학에 대해 케플러와 유사한 생각을 보여준다.

  

   갈릴레오와 케플러는 세계의 바깥 한계가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믿음을 공유한 반면, 데카르트는 물체적 실체로 이루어진 세계가 그 연장에 있어 한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두 번째 자연법칙에 의하면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체는 직선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공간은 유클리드적 공간이었다. 데카르트를 비롯해서 수학적 물리학의 참됨을 견고한 기반 위에 수립하려고 했던 철학자들은, 물리학의 토대가 되는 공간이 연속적이고 무한하며 3차원적이고 균질하며 등방적(isotropic)이라고,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식별가능한 모든 점들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들을 만족시킨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근대 이전의 공간 개념은 상식적이었다. 한 사물의 장소는 그 사물이 인접한 사물과 맺는 관계 속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의 장소가 그 사물의 표면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필로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에서 장소표면이 아닌 삼차원적인 물체로 이루어진 간격(interval)’이라고 주장했으며, 스트라토는 장소진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간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근대적 공간 개념은 사상 최초로 철학적 진공 개념을 도입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서 발명된다. 중세의 학자들은 대개 진공의 개념을 부정했지만, 브래드워딘은 진공의 가능성을 인정했고, 카탈로니아의 랍비였던 하스데이(1340~1410) 또한 세 개의 추상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진 무한 진공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후 조르다노 부르노(1548~1600)에 이르면, 공간은 3차원적인 연속적 자연량이며 그 안에 물체들을 포함하게 된다. 공간에 대한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의 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 뉴턴은 공간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반면(절대론적 관점), 라이프니츠는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coexist) 사물들 사이의 수학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관계론적 관점) 생각했다.

  

   칸트는 그의 경력 초기에는 절대적인 공간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힘이 없으면 관계도 없고, 관계가 없으면 질서도 없고, 질서가 없으면 공간도 없다는 공간에 대한 관계론적 관점을 취했다. 이후 칸트는 관계론적 관점을 포기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공간은 공간적 사물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선행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칸트는 공간에 대한 소박한 절대론자가 아니었다. 그의 공간의 존재론기하학의 인식론이었다. 그의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공간이 객관적이고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며, 실체 혹은 속성도 아니고, 관계도 아니며, 외부적으로 지각되는 모든 사물들을 질서짓는 관념적인 도식이라 말한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공간에 인간의 심적 작용과 무관한 공간적 특성이나 관계가 부여될 필요가 없다. 외부적 직관의 형식인 공간이 필연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제들을 통해 기술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4. 데카르트의 좌표계 방법(Method of Coordinates)

  

   기하학을 공간에 대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은 데카르트의 좌표적 방법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의 좌표적 방법은 기하학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근대 물리학에서 운동 현상을 기술하는 데 있어 적법한 도구를 제공해주었다. 공간에 있는 모든 점들에 방향지워진 길이의 세 쌍으로 이름을 붙이면, 이 점들 사이의 관계는 주어진 길이의 쌍들 사이의 양적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결정될 수 있다. 모든 선과 표면은 주어진 방정식과 관계된 모든 점들의 위치들의 총체로 정의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좌표적 방법은 19세기에 등장한 리만(Riemann)의 다양체 이론(theory of manifolds)과 리(Lie)의 연속군 이론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방향지워진 선형 크기들의 집합으로 하나의 대수적 구조를 정의한다. 이는 완전 순서 체(complete ordered filed)임이 드러날 것이다. m을 무한히 연장된 유클리드적 선이라고 하자. 그리고 A, B, C,...를 이 m 위에 있는 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하자. 이 때 다음과 같은 관계들이 성립한다.

  

(01) BAC 사이에 있다면, ABCA이고 BCA 사이에 있다.

  

(02) 만약 AC라면, AC 사이에 있는 점 B, CAD 사이에 있게 하는 점 Dm 위에 존재한다.

  

(03) 만약 A, B, Cm 위의 서로 다른 세 점이라면, 세 점들 중 오직 하나 만이 다른 두 점들 사이에 있다.

  

(04) 만약

m 위의 서로 다른 네 점이라면, {1, 2, 3, 4}로 구성되는 순열(permuation)

가 있어

사이에 있으면서 동시에

사이에 있고,

사이에 있으면서

사이에 있다.

  

그리고 선 m은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같는다.

  

(D) m에 있는 모든 점들이 서로 다른 두 집합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때, PQ가 위의 두 집합 중 같은 집합

에 속한다고 가정한다면 PQ 사이에 있는 모든 점들 또한

에 속하고, m 위에는 유일한 점 X가 있어 이 X

-{X}

-{X} 사이에 속한다.

  

   b(ABC)‘BAC 사이에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고, OE를 선 m 위의 고정된 두 점이라고 할 때, 우리는 O원점이라고 부르고 선 m 위에서의 선형 순서를 정의할 수 있다. 두 점 X, Y가 있을 때 XY보다 선형적으로 앞선다면 이를 ‘X<Y’라고 하자. 선형 순서는 다음과 같은 세 조건으로 특징지워진다.

  

(01) 오직 b(XOE)인 경우에만 X<O이다.

  

(02) 오직 b(OXE)이거나 X=E이거나 b(OEX)인 경우에만 O<X이다.

  

(03) 오직 X<O이고 b(XOY)이거나, Y<O이고 b(XYO)이거나, O<X이고 b(OXY)인 경우에만 X<Y(X, YO)이다.

  

   순서쌍 <X, Y>을 방향지워진(directed) 선분(segment)이라고 하자. X는 선분의 시작점이고 Y는 선분의 끝점이다. X<Y이면 <X, Y>를 양(positive)이라 부르고, X>Y이면 <X, Y>를 음(negative)이라 부르고, X=Y이면 <X, Y>를 영(null)이라 부른다. (K1) XY, X'Y'이 동시에 양이거나 음이고 에우독소스(Eudoxian) 비율 XY/OEX'Y'/OE가 동일한 경우, 혹은 (K2) XYX'Y' 둘 다 영일 경우, 이를 합동(congruent)이라 부른다. 그리고 선 m'위에서의 선형 순서도 앞서와 같이 정의하자.

  

   {M}을 이러한 방식으로 질서지워진 모든 유클리드적 선들의 집합이라고 하자. 만약 두 개의 방향지워진 선분이 {M}의 서로 다른 혹은 동일한 선에 속하고 조건 (K1)이나 (K2)를 만족시키는 경우 그 둘은 합동이다. ‘방향지워진 선형적 크기(directed linear magnitude, dlm)’는 합동인 방향지워진 선분들의 집합과 동등하다(equivalence). XY를 임의의 방향지워진 선분이라 할 때, [XY]는 이 선분에 속하는 dlm을 뜻한다.

  

   ∑이 선분 OE의 선택을 통해 측정되어진(gauged) dlm의 집합을 뜻한다고 하자. 그리고 [OX], [OY]라는 두 개의 dlm을 생각해보자. 이 두 dlm은 모두 선 m 위에 있다. 이 때 [OY]를 만족시키면서 시작점이 X일 때 선 m 위에 있을 수 있는 끝점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데, 이를 W라고 하자. 우리는 [OW][OX], [OY]의 합(sum)([OX]+[OY])으로 정의한다. 이 경우 +위에서 정의된 하나의 연산(operation)이며 <, +>은 아벨 군(Abelian Group)을 형성한다. m을 질서지워진 선이라 하고, 이 선 위에는 OE가 정의되어 있다고 하자. 이 때 선 m'O에서 선 m과 만난다. OE'/OE=OE/OE가 되도록 선 m' 위의 점 E'를 잡자. 그리고 두 dlm 사이의 곱 [OX][OY]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OY]의 원소 중 하나인 OY'의 시작점이 O이고 끝점이 m' 위에 놓여 있다고 하자. E'X와 평행하면서 Y'을 지나는 선이 m과 만나는 점을 Z라고 하자. 이 때 [OZ]=[OX][OY]이다.

  

   곱 또한 위에서 정의된 하나의 연산이다. [OX][OE]=[OE][OX]=[OX]이고, 영이 아닌 모든 [OX]에 대해서 [OX]

=

[OX]=[OE]를 만족하는

가 하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 +, >[OO]을 영으로 갖고 단위를 [OE]로 갖는 하나의 체(field)이며 관계 <로 순서지워진다. 만약 선이 조건 (D)를 갖추고 있을 경우 <, +, >을 완전 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완전 순서 체는 구조적으로 동등하므로 수학적 관점에서 서로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한 완전 순서 체를 실수 체라고 하고 이를 R로 나타내자.

 

   R위에서 질서지워진 세 순서쌍의 집합을

이라고 부르자. 이 때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모든 점들은

의 원소가 된다.

를 하나의 평면이라고 하고, 규약적으로 하나의 면을 양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의 면을 음이라 부르자.

위에 있지 않은 점 P를 잡고, P가 평면

위에 수직으로 사영된 점을 Q라 부르자. 이 때 PQ/OX=OX/PQ인 양의 dlm [OX]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만약 P

의 양의 방향에 놓여 있을 경우

에서 P까지의 거리는 [OX]이고 반대의 경우는 -[OX]이다. 만약 P

위에 놓여 있을 경우 거리는 [OO]이다. 이제

을 서로 수직인 세 평면을 생각하자.

를 평면

에서 점 P까지의 방향지워진 거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점 P에 질서지워진 세 순서쌍 (

)를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