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언어철학연습 강의노트 02

강형구 2016. 7. 18. 06:44

 

형식 의미론 서설

 

1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는 세 가지의 학문 분야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였던 프레게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대비되는 수리논리학을 창시했다. 또한 그는 언어철학, 특히 현대 형식 의미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산술의 근본 법칙에서 프레게는 최초로 의미의 본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형식화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분석철학의 창시자로, 그의 작업이 없었다면 이른바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회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학자로서의 프레게는 이른바 논리주의 프로젝트를 시도하는데, 이는 수학 특히 대수학(algebra)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였다. 프레게가 논리주의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그는 대수학의 보편성을 정당화하고 싶었고, 둘째로 그는 수학에서의 증명 개념을 엄밀화시키고 싶었다.

 

   당시 기하학(geometry)은 칸트(Kant)의 견해에 따라 선험적 종합 판단의 형식(schema)이라고 인정되고 있었으며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프레게는 기하학에 대한 칸트의 견해를 받아들였지만 대수학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칸트에 의하면 산술 또한 선험적 종합판단이지만, 프레게는 대수학이 경험적 대상을 넘어서서 적용되며 최고의 보편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보편성을 지닌다고 인정되는 논리학(logic)을 근거로 대수학의 보편성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프레게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수학을 엄밀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전까지 상당부분 직관에 기반에 발달해왔던 미적분학의 기초를 세우려는 작업이 코시(Cauchy) 및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레게는 자연스럽게 수학적 증명 그 자체를 엄밀화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생각에 수학적 증명에서는 증명의 각 단계가 분명해야 했고(도중에 직관이 개입되면 안 된다), 수학에서의 추론 또한 논리학으로 환원시켜 그 엄밀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수학의 모든 개념들을 논리학의 개념들로 정의하고, 수학의 모든 법칙들(예를 들어 x+y =y+x)을 논리학의 법칙들로부터 도출할 수 있어야지만 그의 논리주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고 보았다. 프레게의산수의 근본 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1(1893)2(1903)은 그러한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2

 

   프레게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할 당시에는 수학적 진술들을 다룰 수 있는 적합한 논리학이 없었다.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는 수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진술들, ‘x>y', 'xy의 다음 수이다’, ‘모든 x에 대해 x...’, ‘어떤 x...’을 표현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는 관계(relation) 및 양화사(quantifier)를 다루는 논리학을 직접 개발해야 했다.

 

   1879년에 그의 개념기호법(Begriffschrift, Conceptual Notation)이 출판되면서 새로운 논리학 혹은 수리논리학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판단들의 올바른 논리적 추론 관계를 보여주는 언어를 개발했으며, 이 때의 판단이란 참이나 거짓인 생각(Gedanke)사상명제를 뜻한다. 프레게에 의하면 논리 언어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판단들 사이의 논리적 추론과 관계된 속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Socrates is mortal.”, “Everything is mortal.”, “Every person is mortal.”은 겉보기에 형태가 서로 유사해서 문장들의 논리 구조상 차이가 불분명하다. 그런데 이 세 문장들을

,

,

로 표현하면 문장들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게 구분된다.

 

   둘째, 논리적 추론을 뒷받침하는 공리들(axioms)'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셋째, 각 추론 단계를 정당화하는 추론 규칙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1884년에 출판된 그의 책 산수의 기초(Grundlagen der Arithmetik)최초의 분석철학적 저서로 평가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개발한 논리학을 설명하는데, 이 때 그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수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에 대한 진술(statement)을 분석하고, 이러한 언어 분석의 도구로서 자신이 개발한 논리학을 사용한다.

 

   프레게에 의하면 수는 대상(object)이다. 태양노무현 등과 같은 고유명사는 어떤 대상을 표현한다. 수 또한 일종의 고유명사임을 보일 수 있으므로(수 표현이 포함된 모든 진술에서 수를 고유명사화 시킬 수 있다), 수는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레게는 수 진술이 개념(begriff, concept)에 대한 서술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 수란 속성(개념)에 대한 속성이다. 다시 말해 수란 특정한 개념에 귀속되는 수다. 예를 들어 논의를 분명하게 해보자.

 

   “철수는 4개의 사과를 갖고 있다.”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이는 “x는 철수가 갖고 있는 사과이다. 그러한 x4개이다.”라고 바꾸어 쓸 수 있다. 이 때 개념 <x는 철수가 갖고 있는 사과이다>에 귀속되는 수가 바로 4이다. (number)는 개념(concept)을 표현하고, 개념은 대상(object)을 표현하기 때문에, 결국 수는 어떤 대상을 표현한다(대상개념). 결론적으로 수는 일종의 대상이다. 이와 같은 예비적 논의 이후 프레게는 과학 언어에서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1891년에 그는 논문함수와 개념(Function and Concept)을 출판하는데, 이 논문에서 의미에 대한 그의 혁신적인 발상이 등장한다.

 

 

3

 

   「함수와 개념(Function and Concept)에서 그는 과학 언어에서의 판단의 내적 구조는 수학의 함수 개념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레게에 의하면 함수란 불완전한 존재자, 불포화된(unsaturated) 존재자, 논항(argument)이 대입될 자리를 갖고 있는 존재자. 그렇다면 함수와는 대립되는 대상이란 무엇인가? 대상은 논항이 대입될 자리가 없는 완전한 존재자다. 대상은 정의역(domain)과 치역(range)을 구성한다.

 

   당시 수학에서는 함수 개념이 상당히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보다 많은 연산자들이 일종의 함수로 취급되고 있었고(대표적인 예가 극한이다), 보다 더 많은 대상들을 함수에서의 논항과 치역으로 허용하고 있었다(대표적인 예가 복소수의 도입이다). 이에 프레게는 함수 개념을 진술 분석으로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한다. 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가 다루려는 진술이 자연 언어가 아닌 과학 언어(특히 수학 언어)였다는 점이다.

 

   “Socrates is mortal.”이라는 진술을 살펴보자. 이 진술에서 “Socrates”는 자립적이지만 “x is mortal.”은 비자립적이다. “x is mortal.”에서의 x는 무엇인가에 의해 채워져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불완전하며 불포화되어 있다. 프레게는 자립적인 표현이 대상(object)이고 비자립적인 표현이 함수(function)라는 가설 혹은 추측(conjecture)을 한다. 이에 더 나아가, 복합 표현의 지시체는 단순 표현 지시체들의 함수이다. 이 추측을 받아들인다면, 위의 진술은 “Socrates”라는 대상과 “x is mortal.” 이라는 함수로 구성된다.

 

   프레게의 추측을 좀 더 형식적으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 의 역

함 수

치 역

모든 대상

개념(형용사, 동사, 술어, 접속사...)

진리값

Domain

Truth Value(Truth or False)

 

  

   프레게에 의하면 개념은 대상을 지시(refer)한다. 그렇다면 문장(statement)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다음의 두 진술을 살펴보자. “Socrates is mortal.” “The teacher of Plato is mortal.” 두 진술의 사태는 다르다. 그러나 두 진술의 진리치는 같다. 따라서 진술 혹은 문장은 바로 진리치(Truth Value)를 지시한다.

 

   그렇다면 진리치는 대상인가 함수인가? 진리치인 참 혹은 거짓에는 불완전한(불포화된) 부분이 없다. 따라서 진리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진리치를 논항으로 갖는 함수도 가능하다. 그것이 곧 진리함수다. “Socrates is mortal & Plato is mortal.”이라는 진술(A & B)을 생각해보자. AB는 진술이기 때문에 진리치를 지시하고, 알다시피 진리치는 대상이다. 따라서 이 경우 &는 일종의 함수이고, 이 함수는 두 진술의 진리치가 참일 때만 참인 진리치를 산출한다. , & : D × D TV이다. “Plato & Socrates”는 거짓(False)이다. PlatoSocrates가 참인 진리치를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화사는 무엇인가? 대상인가 함수인가? “Everything is mortal.”에서 “Everything”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레게에 따르면 양화사는 이가 함수(함수에 대한 함수, 함수를 논항으로 갖는 함수)로 일종의 함수이다. , “Everything φ(x)(φ) f :

TV이다. 이런 방식으로 프레게는 과학 언어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함수 혹은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고, 과학 언어에 등장하는 그 어떤 문장에 대해서도 그 문장이 지시하는 것을 문장 구성 성분들의 지시체들의 조합으로 밝힐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1892년에 출판된 논문 의미와 지시체에 대하여(On sense and reference)에서 프레게는 과학 언어의 문장을 다룰 때 해당 문장의 의미와 지시체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 = 4”라는 진술과 “4 = 2 + 2”라는 진술, 혹은 샛별 = 샛별라는 진술과 샛별 = 개밥바라기라는 진술의 경우, 두 진술의 지시체 즉 진리치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두 진술의 의미는 다르며, 두 진술의 의미가 다른 것은 각각의 진술을 제시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프레게는 진술의 의미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의미는 지시체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한 진술(명제)의 의미란 그 문장이 참일 조건이라고 추측했다.

 

구 분

의미(Sinn)

지시체(Bedeutung)

고유명사

?

대 상

술 어

?

함수(개념)

문 장

사상(Gedanke)

명제

진리조건

진리치

 

   이제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났다. 마침내 프레게는 1893년에 산술의 근본법칙1권을 출판하는데, 여기서 그는 대수학(대수학적 이론)에 등장하는 특정 문장의 진리조건을 적은 수의 공리들에 근거해서 회귀적으로(recursive) 제시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1권에서 그는 자연수를 거쳐 유리수까지 자신의 논의를 확장하고, 더 나아가 1903년에 출판된 2권에서는 논의를 실수복소수에까지 확장하지만, 2권을 출판하기 직전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제기한 역설(parodox)로 인해서 그는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자신의 오랜 노력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후 프레게의 프로젝트는 러셀과 화이트헤드(A. N. Whitehead)가 그 명맥을 잇는다.

 

4

 

   하지만 프레게의 노력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그의 논리주의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그가 개발한 형식 논리학 및 판단에 대한 조합 원리는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프레게는 1918년에 형식 논리학에 대한 세 편의 논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논문들의 제목은 차례로사상(Thought),부정(Negation, 거짓을 논항으로 받아들일 때 참을 산출하는 함수),복합사상(Compound Thought, 진리함수)이었으며, 뒤이어 그는 양화사에 대한 논문을 쓰려 하였으나 죽음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프레게는 과학 언어 특히 수학 언어에서의 지시체(의미가 아니라)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의미가 아닌 지시체가 세계에 관한 참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의미로부터 지시체로의 상승을 통해서 참됨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복합표현의 진리값은 단순표현의 진리값으로부터 조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과학 언어와 자연 언어를 분명히 구분하고, 자연 언어가 보여주는 모호함과 맥락 의존성 때문에 자연 언어는 형식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연 언어가 형식화가 될 수 없다면 자연 언어의 조합성을 함수 개념을 적용해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 언어에 대한 프레게의 믿음은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과 콰인(Quine)을 거쳐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일상 언어에 대한 형식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최초의 변화를 일으킨 이가 바로 데이빗슨(Donald Davidson)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 참과 의미(Truth and Meaning)에서 일반 의미론은 의미의 진리조건을 회귀적으로 산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프레게 형식 의미론의 두 번째 원리인 진리조건을 만족시키기는 했지만, 데이빗슨은 알프레드 타르스키(Alfred Tarski)를 따라 술어에 대응하는 대상은 없다고 봄으로써 프레게의 첫 번째 원리인 의미 조합성에 대한 함수적 적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빗슨은 1차 술어 논리학(first-order logic)이 바람직한 논리학이라 생각했다.

 

   이에 반해 타르스키의 제자 리차드 몬테규(Richard Montague)는 자연 언어 또한 형식 언어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형식적인 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논문On the proper treatment of quantification in ordering language(PTO)에서, 문장의 의미는 그 문장의 진리조건이며, 문장의 진리조건은 가능세계로부터 진리치로의 함수라는 가능세계 의미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칸트는 철학자이다.”플라톤은 철학자이다.”라는 두 문장이 있을 경우, 각각의 문장이 참인 가능세계가 있고 거짓인 가능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해당 문장의 의미는 해당 문장이 참인 가능세계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몬테규는 데이빗슨과는 달리 양상 논리학(Modal logic)을 바람직한 논리학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