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

드라마 '욱씨남정기'를 기다림

강형구 2016. 4. 10. 18:06

 

   나는 평소에 뉴스 이외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즐겁게 시청하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욱씨남정기. 배우 이요원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기도 했고, 드라마 첫 회부터 드라마의 주제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몇몇 지인들은 이 드라마를 일종의 판타지라고 평가했는데, 나는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드라마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조선의 숙종 시대에 서포 김만중이 쓴 소설 사씨남정기에 대한 21세기적 변주라고 할 수 있다.

  

   한글로 쓰인 조선시대의 소설들이 단순하고 과장된 이야기 전개를 통해 권선징악을 말함으로써 일반 민중들의 속을 풀어줬던 것처럼, ‘욱씨남정기역시 갑질에 대항하는 을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숱한 을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을들은 드라마의 결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을들이 결국에는 갑질하는 갑들에 맞서 싸워 승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더 자극한다. 이는 홍길동이 악당들을 쳐부수는 뻔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홍길동의 통쾌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던 것과 비슷하다.

  

   또한 이 드라마의 특징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갑을 사이의 불공평함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일종의 종합 선물세트라는 것이다. 드라마 초반부에는 대기업인 황금화학과 중소기업인 러블리 코스메틱스사이의 불공평한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하청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기업이 어떤 종류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꼬집는다. 또한 대기업의 여성 직원이 승진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능력 있는 여성 직원이 남성 중심의 조직 내에서 어떤 종류의 추문과 소문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드라마의 주된 인물들이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과 절묘하게 대응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욱팀장은 능력 있는 여성이지만 3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있으며, 여성을 견제하는 강력한 남자 직원들에게 시달린다. 남정기 과장은 착실하지만 소심한 중소기업 직원으로 5년 전 이혼을 하고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남과장의 아버지는 교사 출신으로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고, 남과장의 동생은 백수로 취업을 하지 못해 형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인구 노령화, 이혼남녀의 증가, 높은 청년 실업률, 한 부모 가정 등과 같은 사회 문제들이 주요 인물들과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러블리에서 일하는 한과장은 우리 시대의 워킹맘을, 박대리는 매달 학자금대출금을 갚아 가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젊은 직장인을, 장미리 사원은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우리 시대의 비정규직을 대표한다.

  

   한 시대를 대변하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대중예술의 역할이라면,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대중예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이 드라마에 애착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극중에서의 남정기 과장이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회사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기보다는 착실하고 조용하게, 다소 소심하게 일한다. 다른 직원들에게 쓴 소리 잘 못하고,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려고 하며, 요령 있게 자기 몫 챙기는 직원들과 비교하면 다소 바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착하면서도 은근히 능력 있고, 다른 직원들도 따뜻하게 잘 챙겨주며, 든든한 회사의 버팀목이 되어 보이지 않게 능력을 발휘하는 소심남 남정기 과장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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