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

30년 중의 4년

강형구 2015. 11. 9. 23:25

   나는 31살이 되던 20121월에 직장에 취직했다. 지금이 201511월이니, 취직 이후 310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다. 나는 20057월부터 200810월 말까지 군복무를 했는데, 군복무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40개월이라는 복무기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4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군복무가 40개월이었다면 직장생활은 30년 정도 해야 하니 360개월 정도 된다. 군복무 기간이었던 40개월보다 9배 정도 많은 셈이다.

 

   나는 군복무를 착실하게 했다고 자부하지만, 나의 복무로 인해서 대한민국 육군이 발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특정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던 조직의 일원으로 편성되어 그 조직을 유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을 따름이다. 내가 속해 있던 육군 조직의 변화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소수였다. 통신대대의 대대장은 중령급인데, 대대장인 중령조차도 부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적어도 장성 정도의 장교가 사단의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나 자신 역시 진급을 해서 장성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어떻게 될까. 나와 같은 사람도 훗날 팀장이 되고 부장이 될까. 물론 나는 군대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의 임무수행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임무를 받들어 수행했을 뿐이다. 직장 일을 대하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를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특성과 능력에 맞게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따름이다. 만약 내게 높은 지위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높은 지위를 자발적으로 얻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복무를 할 때 나는 대한민국 육군이 세계 최고의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가 속한 육군이 우리나라 시민들을 외부적인 위협들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했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한다. 나는 나의 직장이 세계 최고의 조직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나의 직장이 나라로부터 받은 소임을 무사히 잘 실행해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한 소임을 충실히 다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며, 과해도 문제이고 부족해도 문제가 된다.

 

   나는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나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임을 알고 있다. 이는 군대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장래 희망이 군인은 아닌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나의 전공이기도 한 철학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이라는 학문을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으로 삼은 경우는 드물었다. 철학자들은 대개 생계를 유지하게 해 주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거나,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철학은 그 자체로는 먹고 사는 일과 크게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에게 철학은 일종의 여가였지만, 삶에 있어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철학자는 철학적 사유로부터 정신적인 평온과 위안을 얻었다. 나에게 있어서도 철학은 직업보다 더 근본적이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만에 하나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면,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나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책을 쓰고 책을 옮기고 강의하며 토론하는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게 기여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나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26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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