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 33

과학관에서의 주말근무

국립대구과학관의 선임연구원으로서 나는 2달에 한 번 정도 휴일근무를 한다. 근무의 정식 명칭은 ‘휴일관장’이다. 휴일에는 일반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으므로 일반직 직원 중 선임급 이상이 관장을 대리해서 근무를 한다. 어제인 2023년 11월 26일에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의 휴일관장 업무를 수행했다. 일을 하다보면 때로 내가 속한 조직을 벗어나 외부인의 관점에서 나의 조직을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고 어제의 경우 내가 휴일근무를 했기 때문에 아내가 아이 셋을 혼자서 봐야했다. 어차피 점심식사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하게 식빵에 잼을 발라 우유와 함께 도시락을 싸오려 했다. 그런데 아내가 그냥 같이 과학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집은 과학관과 가까운 곳에 ..

과학관 이야기 2023.11.27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나는 다시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학박사(Ph.D.)가 되었다. 석사일 때는 나 스스로를 ‘연구자’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박사학위를 갖고 나니 이제는 나 스스로를 정식적인 ‘연구자’라 생각하게 된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대학’이 아닌 ‘국립과학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전시기획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서 과학기술자료 수집, 조사, 연구, 전시 업무를 담당했다면, 나는 올해 7월부터 교육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서 과학관 개인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립과학관은 국가가 운영하기는 하지만 학교보다는 훨씬 더 수요자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 ..

과학관 이야기 2023.07.12

국립과학관 속 과학철학 전공자

대학 속 과학철학 전공자는 국립과학관 속 과학철학 전공자보다는 입장이 덜 애매한 것 같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교양 과학철학 강의를 하거나,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좀 더 심화된 과학철학 강의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국립과학관 속 과학철학 전공자의 역할은 퍽 애매하다. 특히 나는 서양 과학철학 전공자로서 20세기 전반기의 물리학 이론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내가 한국의 국립과학관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문득 내가 이런 의문을 떠올린 이유는 오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근무하고 계신 한 연구관님의 행적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이분은 과학관에서 20년 이상 일하면서 겨레 과학의 원리와 의의를 일관되게 연구하고 계신다. 서양 과학사와 서양 과학철학을 공부한 나는 과연 국립과학..

과학관 이야기 2021.11.07

아마추어의 즐거움

과학관에서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은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업무 과정에서 우연히 오명 전 부총리님을 알게 되었고, 부총리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부총리님이 쓰신 책들과 관련 자료들을 받아 읽었다. 1940년에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교수와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우연한 계기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체신부 차관과 장관을 하며 1980년대 우리나라 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약진하게 만든 중요한 한 명의 인물을 알게 된 것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님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롭다. 1944년에 태어나 어렸을 때 큰아버지로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에 입사하여 새로운 사업으로 전자산업을 제안했다. 이후..

과학관 이야기 2021.08.04

마흔이나 되었는데

요즘 부쩍 자주 하는 생각은 ‘전문성’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의 공부가 크게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머리가 똑똑하거나, 아주 노력을 많이 하면 고등학교까지의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공부 역시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긴 하다. 대학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학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학점을 얻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 속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분야라도 상관없다. 심지어(!) 과학철학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철학 연구 성과가 학술지에도 게재되지 않는가. 이 분야에 대..

과학관 이야기 2021.07.30

오명 전 부총리님을 뵙기 전

오명 부총리는 1940년에 2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1958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경기고등학교 3학년 때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결심했는데, 당시 김원규 교장선생님의 말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육사로 가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육사 생도 시절 4년 동안 이전까지의 독선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완전히 개조했다. 또한 군대 무기 체계가 전자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1962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편입하여 1966년에 졸업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유학, 1972년에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 교수(1966~1979)..

과학관 이야기 2021.03.18

소신 있고 깔끔하게 잘 하기

어제는 부산에 있는 모 국립 박물관으로 제안서 평가를 다녀왔다. 기획전시를 위해 자료를 대여, 운송, 설치하는 전문 업체를 선정하는 제안서 평가 자리였다. 나는 대구과학관에 입사한 2017년 이후부터 계속 학예 업무를 하고 있는 3급 정학예사이기에 나를 평가 위원으로 부른 모양이다. 나 스스로가 제안요청서를 써서 조달공고를 올리고 제안서 평가를 여러 번 진행해 보았기 때문에 이번 제안서 평가의 문제점들이 쉽게 보였다. 우선, 담당 학예사가 제안요청서 정보를 평가위원들에게 공유해주지 않았다. 또한 평가위원들이 정성평가를 하기 전에 정량평가 결과를 공지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업체가 제출한 제안서에는 평가위원들이 업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명시적으로 기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인데..

과학관 이야기 2020.11.07

앤드루 로빈슨 지음, [지진 두렵거나 외면하거나] 발췌

① 1장: 세상, 흔들리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영국에도 지진이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지구상의 어떤 지역도 지진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둔하고 무딘 영국조차도 말이다. (18쪽) 하지만 1923년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을 무렵에는 서양의 개념과 과학이 빠르게 퍼져서 옛날 전설을 믿는 일본인들이 거의 없어졌다. 나마즈에가 쏟아져 나왔던 1855년과 비교하면 1923년에는 거의 팔리지 않을 정도였다. 초자연적인 메기 대신 많은 도쿄 주민들은 조선인 이민지 집단으로 비난의 눈길을 돌렸다. 화재 이후,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으며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검게 탄 도시를 휩쓸었다. 심지어는 일본 황가를 암살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까지 실렸다. 그 이후 6천 명에서 1만 명 사이의 조선인..

과학관 이야기 2018.01.13

한국농업기계학회, [한국 농기구 도감] 발췌(2)

한국 농기구 도감 (한국농업기계학회, 건일문화, 2001년) ◎ 제3편: 현대의 농기계 (류관희․금동혁․이규승) : 현대의 농기계란 내연기관, 전동기 등의 기계적 동력을 이용하는 농업기계를 의미한다. 순번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1 농업동력, 농장정비 및 운반용 기계 농업동력 농용 기관 2 동력 경운기 3 농용 트랙터 4 관리기 5 농장정비용 기계 농용 굴삭기 6 논두렁 조성기 7 적재 및 운반용 기계 로더 8 스키드 로더 9 트레일러 10 농용 운반차 11 노지작물 생산용 기계 파종 및 이식 준비 작업용 기계 쟁기 12 원판 쟁기 13 회전경운작업기 14 무논 정지기 15 원판 해로우 16 배토기 17 휴립기 18 비닐피복기 19 휴립․비닐피복기 20 심토파쇄기 21 발근기 22 파종 및 이식용 기계 이..

과학관 이야기 2018.01.09

한국농업기계학회, [한국 농기구 도감] 발췌(1)

한국 농기구 도감 (한국농업기계학회, 건일문화, 2001년) ① 제2편: 재래의 농기구 (박호석, 농협대 농업기계학 교수) : 동력을 이용하는 농업기계가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래로 사용된 전통농기구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 그 기본적인 종류와 형태가 갖추어 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당시의 재배작물의 종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우리 농업의 중심인 벼농사가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 ... 우리 나라의 150여종의 재래농기구를 모두 16가지의 쓰임새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순번 구분 명칭 비고 1 갈이 연장 따비 2 쟁기 3 극젱이 4 괭이 5 가래 6 삽 7 삶이 연장 써레 8 쇠스랑 9 곰방메 10 번지 11 나래 12 고무래 13 발..

과학관 이야기 201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