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강형구 2023. 7. 12. 22:03

   나는 다시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으로 돌아왔다. 1년 6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학박사(Ph.D.)가 되었다. 석사일 때는 나 스스로를 ‘연구자’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박사학위를 갖고 나니 이제는 나 스스로를 정식적인 ‘연구자’라 생각하게 된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대학’이 아닌 ‘국립과학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전시기획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서 과학기술자료 수집, 조사, 연구, 전시 업무를 담당했다면, 나는 올해 7월부터 교육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서 과학관 개인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립과학관은 국가가 운영하기는 하지만 학교보다는 훨씬 더 수요자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 과학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그 성격이 민간 기업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국가 차원의 요구와 시민들의 요구를 모두 반영해서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운영해야 하는 기관이 국립과학관이다.

 

   국립과학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시민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차원에서 메타버스나 인공지능에 관해 교육하라고 과학관에 요구를 하면 이를 따라야 한다.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들이 특별한 성격을 가진 교육 프로그램을 요구하면 이에 부응할 필요도 있는데, 왜냐하면 과학관은 운영 예산의 일부를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과학관에는 매년 수익금 목표치가 주어지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이를 달성해야 한다. 시민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면 관람객을 모을 수 없고, 관람객이 오지 않으면 수익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학의 교수는 대학생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문 후속세대(대학원생)를 양성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함으로써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은 다르다.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은 국가와 시민이 필요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따라서 국립과학관 연구원의 주된 업무는 사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기에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외부적인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자신의 전공을 조금이나마 살리는 방향으로 과학관 업무를 추진해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잠정적으로 ‘아인슈타인’에 특화된 국립과학관 연구원이 되기로 했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은 국립과학관의 전시, 교육, 행사 등에서 앞으로도 계속 사라지지 않을 아이콘일 것이다. 연구도 아인슈타인에 관해서 하고, 교육이나 특강 또한 아인슈타인을 주제로 진행하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학창 시절, 아인슈타인이 겪은 구직의 어려움, 아인슈타인의 승진 과정, 아인슈타인의 세계관, 아인슈타인의 과학철학 등 아인슈타인에 관련해서 풀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나는 앞으로 과학관의 여러 실무들을 열심히 하겠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아인슈타인’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또한 업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조금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나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애쓰더라도 빨리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내 일이니 내 일이 아니니 하며 시시콜콜 따지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일을 빨리 처리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어디서든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일하는 시간 또한 재미있게 잘 지나간다. 적극적으로 주체가 되어 일하지 않으면 일하는 시간이 지겹고 고통스럽게 되기 마련이다. 일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전문가가 되어 간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이,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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