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철학사를 추적하는 탐정

강형구 2022. 8. 10. 15:33

   물리적 직관을 수학적 이론으로 번역하는 과정에는 여러 요소가 개입된다. 물리적 직관은 수학적 이론보다 더 많은 내용을 질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직관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내어 이론화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이론화 작업에 필요한 수학 이론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참 행운이겠지만, 만약 이론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이론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잘 찾아보면 유사한 개념 혹은 이론이 있다. 인간 지성의 문제의식은 시대적인 성격이 강해, 동시대의 뛰어난 지성 중 비슷한 직관과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실로 미적분도 그러했다.

 

   뉴턴의 경우는 물리적 직관보다는 수학적 추론과 계산에 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생각에 뉴턴은 아인슈타인과 비교하면 수학은 더 잘했고 물리적 직관 능력은 부족했다. 아인슈타인은 비범한 물리적 직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으며, 문장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아인슈타인은 ‘예술적’인 사람이었고 그 점에서 갈릴레오를 닮았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는 철학적 사고, 물리적 직관, 수학적 형식 이론이 복잡하게 결합하고 있다. 이 요소들 각각이 아인슈타인의 이론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갖는 철학적 의의를 해석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설혹 물리학자라고 해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 제럴드 홀튼(Gerald Holton)이 있다. 아마 미국에서 아인슈타인 연구자로서의 홀튼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홀튼을 마음 깊이 존경하며, 그가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쓴 물리학 교과서 [Physics : The Human Adventure]를 우리말로 꼭 번역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홀튼이 제시한 통찰은 깊이가 있고 나 역시 대학원생일 때 홀튼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여러 번 경탄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나는 홀튼이 제시하는 해석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른바 ‘논리경험주의’라는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들이 내놓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있었고, 나는 이미 그에 속하는 책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는 논리경험주의의 상대성 이론 해석을 추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인슈타인 자신이 쓴 글들을 읽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푸앵카레와 마흐의 글을 읽었으며, 좀 더 과거로 가서 헬름홀츠와 리만의 글을 읽었다. 그때야 비로소 어렴풋이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났다. 왜 그토록 위대했던 가우스가 새내기 교수였던 리만의 통찰(1854년 교수취임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어떤 의미에서 상대성 이론이 리만의 통찰을 물리학으로 구현한 것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은 수학화되었는데, 이는 물리적 직관을 이론화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억지스럽고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적이기도 했다.

 

   자연을 수학적 도식 속에 짜 맞추는 것은 분명 놀랍도록 성공적이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수학적 도식이 자연을 온전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적 도식이 어떤 근거와 한계를 갖는지 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수학적 도식에서 비롯한 환상에 현혹되지 않고 세계에 대한 경이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과학자는 아니며 그저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철학사를 추적하는 한 명의 탐정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한 명의 탐정인 내가 제시하는 결론은 일종의 추측이며, 여러 가능한 결론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나의 결론이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