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과학철학 연구자의 자리

강형구 2022. 7. 5. 15:53

   예전부터(1984년부터) 있었던 서울대학교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대학원)은 최근 과학학과(대학원)로 바뀌었다. 과학학과로의 개편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학과가 학부 과정에서부터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에서 자연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배운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대학원에서 과학학을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과학학(Science Studies)이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학생들의 관점에서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함께 공부할 때 과학을 더 친숙하게 여기고 과학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과학기술정책이 있다. 우리나라를 이제 과학기술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 예산을 배정하고 과학기술 연구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일이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시 본격적인 역사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과학기술자들 스스로 역사적 저술을 집필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인문학적이고 공정한 관점에서 역사 연구가에 의한 역사 서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오랜 역사 연구의 전통에 속한다. 나는 역사학 특유의 학문적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며, 과학학과 내의 과학사 전공(한국 과학사, 동양 과학사, 서양 과학사)자들은 이 전통 아래의 연구자들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은 서양의 과학을 공부한다. 그렇기에 서양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 과학사는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연구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 과학사는 어떤가? 동양 또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동양 과학사를 연구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 과학사와 동양 과학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는 아마도 서양 또는 동양에 있는 연구 기관(대학)과의 긴밀한 협력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학학에서 과학철학의 자리는 무엇일까? 서양 과학의 역사를 보면, 과학자들이 믿고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과학 사상들이 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 속 과학 사상을 이해하면 과학의 내용이나 실천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과학 이론들 또는 과학적 담론을 들여다봐도 이들에 은연중에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특정한 방식이 전제되어 있고, 이러한 방식을 이해하면 오늘의 과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에서 더 나아가, 철학적인 관점에서 과학의 실천 혹은 실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내가 볼 때 과학철학은 교양 있는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오늘의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과학철학”에서도 중심은 “철학”이지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학”이란 인식 주체에게 주어진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자신에게 맞는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다. “철학”이 굳이 답을 주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과학적 내용과 과학적 실천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해석하고 의견을 형성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형성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과학철학은 탐구 과정에서 좀 더 깊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직 전문가들만을 위한 과학철학은 과학철학 특유의 존재 의의를 상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오래전부터 전문가, 권위자로부터 부당한 권위와 권력을 빼앗아 많은 이들에게 이를 다시 나누어 준 학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