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강형구, 과학철학의 친구

강형구 2022. 6. 24. 11:46

   최근에 나는 국내의 2개 철학 학회로부터 학술 논문심사 의뢰를 받았다. 내가 논문심사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논문심사를 끝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또한 그 초고가 완성되었다. 이 초고가 논문심사 과정에서 얼마나 수정될 것인지 지금으로서 잘 알 수 없지만, 초고를 계속 수정해나가면 졸업은 가능하리라고 예상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졸업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나는 내가 뛰어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 역시 우리나라 과학철학의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과학철학 연구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한스 라이헨바흐를 중심으로)을 연구하고, 시간과 공간의 철학 및 양자역학의 철학 또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것이다. 정식 대학교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필요로하는 기관들에 찾아가 강의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 국립대구과학관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과학관 연구원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의무들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범위에서 과학철학 연구를 앞으로도 진행해 나갈 것이다.

 

   나는 올해 7월부터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Experience and Prediction)](1938년 출판)을 번역할 것이다. 이 책은 라이헨바흐의 대표적인 인식론적 저서이므로 우리나라에 꼭 번역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슐리크의 [일반 인식론(General Theory of Knowledge)], 카르납의 [세계의 논리적 구조(The Logical Structure of the World)]와 비견될만한 책이다. 내년에는 라이헨바흐의 [시간의 방향(The Direction of Time)]을 번역할 것이다. 이 두 책의 번역을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번역해도 상관이 없지만, 내가 알기로 현재로서는 나 말고는 이 두 책을 번역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이다.

 

   현대의 물리 철학 관련 저서들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책들([나우 : 시간의 물리학]이나 [이토록 기묘한 양자])을 번역하는 일은 일종의 ‘우연’이다. 출판사의 필요와 나의 관심이 우연히 일치할 때 번역 작업은 성사된다. 이와 달리 라이헨바흐의 책들을 번역하는 것은 나에게는 일종의 ‘필연’이다. 설혹 책을 만들 출판사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사실과는 상관없이 나는 번역을 진행한다. 이미 나는 라이헨바흐의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 [바일의 리만 공간 개념 확장과 전기의 기하학적 해석]을 정식 출판과는 상관없이 번역한 바 있다.

 

   그러니까 아주 높은 확률로 다음의 사실을 예측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과학철학 연구 경력을 통해 라이헨바흐의 주요 과학철학 저술 대부분을 번역할 것이다. 그것이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출판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번역 결과들을 출판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출판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번역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출판사가 나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오늘날의 물리 철학 저서는 출판이 될 것이다. 그 또한 나에게는 사뭇 기쁜 일이다.

 

   앞으로 나는 나에게 들어오는 번역 의뢰, 논문심사 의뢰, 강의 의뢰 등등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수용할 셈이다. 내가 이렇게 즐겁게 수용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분야에 대한 수요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이고 작위적인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고 믿는 것들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러한 이야기가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크게 상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저 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분명 ‘과학철학의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