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생각을 장려하는 사상가, 푸앵카레

강형구 2022. 5. 15. 10:07

   어떤 점에서는 비범하게 뛰어나지만 다른 많은 측면에서는 아주 어설퍼서 더 정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푸앵카레다. 푸앵카레의 글을 읽으면 그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은 아주 솔직해서 그의 글을 읽으면 그 글이 곧 그의 진실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푸앵카레는 자신의 글 속에서 아주 근본적이고 진지한 사고를 전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푸앵카레의 문체는 ‘탐구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내가 확고하고 명확한 지식을 알고 있고, 그것을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연이나 기고를 자기 고유의 사고를 전개하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래서 그의 기고문을 읽거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서 한 명의 천재가 생각을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 역시 푸앵카레와 비슷한 문체를 보이지만, 아인슈타인의 글은 푸앵카레의 글보다는 약간 덜 솔직하고 약간 더 거들먹거리는 것 같다. 아인슈타인이 괜히 불필요하게 멋있게 글을 쓰려고 한다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정확하게 나의 평가를 표현하자면, 아인슈타인은 푸앵카레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고의 비약 정도가 강하지만, 자신의 사고 과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더 서툰 것 같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리만, 헬름홀츠, 푸앵카레, 마흐의 생각을 종합하고 융합해서 창조적인 성과물을 도출해낸 것을 십분 인정하지만, 그의 융합과 창조는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사후 이에 대한 정확한 의미 규명이 필요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그와 같은 의미 규명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독한 천재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에 대한 나의 불만은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 구조물을 중심으로 설명하려고 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왜 이게 나의 불만이냐면, 리만, 헬름홀츠, 푸앵카레 모두에 있어 중심적인 문제는 ‘측정 기준이 되는 물체 길이의 위치 독립성’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필요한 것은 위상 기하학이 아니라 계량 기하학이다. 위상 기하학이 아닌 계량 기하학에서 물리적 대상들의 위치를 측정하고 그것에 좌표의 값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리적 대상에 좌표의 값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측정이 필요하다. 공간 속 모든 물리적 대상들에 좌표의 값을 부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하나의 측정 기준 물체가 존재해서, 이 물체를 이용한 측정 절차를 통해 대상들에 좌표의 값을 지정해주어야 한다.

 

   상대성 이론을 전개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관측자, 빛 신호, 두 종류의 측정 도구(길이 측정 도구, 시간 측정 도구)를 이용해서 특수 및 일반 이론을 전개할 수 있다. 복잡한 수학적 표기법은 이상과 같은 직관적인 물리적 대상들의 행태를 기술하는 일종의 ‘도구’로서 도입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론을 전개하면 이론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 커진다. 우리는 왜 측정 도구가 특수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방식의 행태를 보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자연의 사실’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면, 주변에 질량(에너지)이 있을 때 보이는 측정 도구의 행태가 주변에 질량(에너지)이 없을 때 보이는 측정 도구의 행태와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의 달라짐이 실험과 측정을 통해 확인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이러한 측정 도구의 행태 변화를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측정 도구의 행태를 더 근본적인 방정식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이러한 언급은 사뭇 편향된 것이다. 내가 볼 때 오히려 그는 기초적인 자연 과정을 물리학의 기초 개념과 대응시키는 것의 중요성과 한계를 강조해야 했다.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추구하며 수학적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한 까닭에, 기초 측정 도구의 행태에 관한 오랜 철학적 논의의 전통이 흐려졌다. 아인슈타인은 여러 번 푸앵카레의 영민함을 칭찬했지만, 그 칭찬은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기 위한 다소 왜곡된 칭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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