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글쓰기 연습

강형구 2016. 12. 23. 22:55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전통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여름 점심시간에 식사를 한 후 단체로 낮잠을 잤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중학교 교실 바닥은 나무로 된 마루였다. 학생들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책상을 모두 교실 뒤편으로 밀었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 잠을 잤다. 나는 이 전통이 퍽 좋았다. 우리 학교의 또 다른 전통은 일기쓰기였다. 아무런 주제라도 좋으니 학생들은 매일 공책 반 쪽 분량의 일기를 써야했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매 월 학생들의 일기작성 현황을 검사하셨다. 나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일기를 쓰는 것이 귀찮을 때가 많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중학교 시절 나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서 독서 감상문을 제출하라고 해서 억지로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재미가 붙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니 내가 직접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내용들을 일기에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연습은 시작되었다. 일기에 엉터리 같은 시를 쓰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지어내어 썼다. 어떤 소설가의 문체가 멋있다고 생각하면 그 소설가와 비슷한 문체의 문장들을 지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썼던 중학교 시절의 일기장이 아직도 집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신문동아리에 가입해서 글을 썼고, 국어선생님의 논술 수업시간에도 글을 썼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틈틈이 내 생각을 글로 남겼다.

  

   인문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에는 수업들을 수강하며 각종 보고서들을 썼지만, 글쓰기와 관련해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였다. 마침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책세상 출판사에서는 니체의 우리말 번역본 전집을 차례로 출간하고 있었다. 나는 교수직을 그만 둔 니체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산과 숲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고,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공책에 적어두었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글로 남겼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니체의 문체는 경쾌하고 발랄했으며 심오했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재미가 있어서 술술 읽혔다. 나는 마음에 드는 니체의 단편들을 가지고 다니던 공책에 베껴 썼고, 그러다가 니체의 문체를 비슷하게 흉내 내어 글을 써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습관은 점점 자리를 잡아 갔다. 군대에 들어가서는 반 강제적으로 수양록이라는 일기를 썼다. 의무적인 수양록 쓰기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늘 공책을 한 권 사서 틈틈이 나의 생각들을 문장들로 남겼다. 어떤 날에는 한 두 문단으로 글이 끝나지만, 어떤 날에는 한 쪽이 넘는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통신장교로 근무하던 어느 날 나는 예술의 기능이라는 제목의 글을 한 편 썼고, 우연히도 그 글을 계기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수많은 글들을 썼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보고서나 논문처럼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글들 이외에도 개인적인 기록들을 공책에 많이 남겨두었다.

  

   지금도 나는 늘 가방에 공책을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글을 쓰며 생각들을 정리할 때도 있고, 떠오른 좋은 착상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글로 남기는 경우도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무엇인가 대단한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글 쓰는 일이 습관이 되었고, 글쓰기를 통해 평소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글을 쓴다. 무엇보다 글쓰기에는 돈이 거의 안 들어서 매우 마음에 든다. 공책 한 권은 2천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고, 볼펜이나 샤프 펜슬을 구입하는 데에도 2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짐을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서 좋다. 공책 한 권과 필기구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또한 공책 한 쪽에 글을 쓰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을 시작하며  (0) 2017.01.01
2016년을 되돌아보며  (0) 2016.12.31
대화하는 일  (0) 2016.12.18
산후조리원에서의 생활  (0) 2016.12.15
달성군민 형구씨  (0) 201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