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달성군민 형구씨

강형구 2016. 12. 14. 11:52

 

   1982년에 태어나 35년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형구씨는 근래에 들어 대구 달성군 유가면에 정착하게 되었다. 형구씨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국립대구과학관, 달성도서관 등이 있다. 형구씨의 아내는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근무하고 있어, 형구씨는 아내의 직장 근처로 집을 얻었다. 형구씨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자연과학을 무척 좋아한다. 그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지금까지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그는 석사학위를 갖고 있지만 그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제 형구씨는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선생님을 만났다. 물리학 박사인 김선생님은 20162학기에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매주 1번씩 방문하여 DGIST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계신다. 형구씨는 대학원 시절부터 김선생님과 알게 되어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선생님은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며, 조만간 물리학의 철학에 대한 책을 출간하실 예정이다. DGIST에는 고대철학을 전공하시고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셨던 김교수님도 석좌교수로 계신다. 어제 형구씨는 김선생님, 김교수님과 함께 DGIST 교직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형구씨는 직장인이다. 그래서 형구씨의 삶은 김선생님, 김교수님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김선생님과 김교수님은 대학 입학 이후 계속 공부하면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고,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논문과 책을 쓰신다. 반면 형구씨는 휴일이 아닌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그래서 그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제 저녁식사 중에 김교수님께서는 형구씨에게 전공에 대해서, 박사논문 주제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형구씨는 20세기 현대 서양철학사조인 논리경험주의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한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에 대해서 논문을 쓰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형구씨는 직장인인 자신이 논문을 쉽게 완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며, 다만 꾸준히 라이헨바흐의 책들을 번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님께서는 형구씨의 얘기를 듣고 훗날 라이헨바흐에 대한 좋은 책을 써달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에는 그런 책들이 부족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식사가 끝나고 형구씨는 김선생님의 과학사 과학철학 강의를 잠시 청강했다. 형구씨는 대학원 시절에 김선생님의 강의를 빼놓지 않고 수강했던 적이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똑똑해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참 멋진 일처럼 보였다. 형구씨는 작은 키에 쉰 목소리를 내던 라이헨바흐가 강의에서만큼은 학생들을 매료시켰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라이헨바흐는 구체적인 과학적 사례들을 들며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했고, 그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당시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적 사고의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선생님의 강의는 흥미로웠고 10명 남짓한 학생들은 김선생님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형구씨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예전에 수업을 듣던 대학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지난주에 딸아이의 아빠가 된 형구씨는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를 생각한다. 바슐라르 역시 딸을 가진 아빠였고, 직장을 다니면서 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형구씨 역시 훗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사의 자격으로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고독한 여행자이자 반항아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신사적이던 막스 플랑크와 모리츠 슐릭, 친절하면서도 의지가 확고했던 루돌프 카르납, 열정적으로 낡은 철학을 변혁시키려 했던 라이헨바흐의 얘기를 언젠가 그 역시 학생들 앞에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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