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만일을 대비한 기록

강형구 2016. 12. 4. 19:46

 

   나는 나에게로 전수된 과학철학을 위해서 이 기록을 남긴다.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의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철학은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며, 특히 서양 유럽국가에 속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1930년대 이래로 현대의 과학철학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발원지로 삼아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했다.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 이후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이후로 지금까지 상호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극히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문화적 산물들을 받아들였고, 숱한 책들이 미국으로부터 대한민국에 유입되었다.

  

   나는 동양인이며,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다. 한국은 불교와 유교라는 동양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학문을 발전시켜 왔다. 나는 한국이 어느 정도 근대화를 이룬 상황이었던 1982년에 태어났다. 내가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된 계기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책으로부터 왔다. 한국의 학자들은 서양으로부터 과학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일반인들을 위해서 번역했고, 공부에 관심이 있던 청소년이었던 나는 그런 책들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발견해서 읽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주변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가족들이나 친척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다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사설학원에서 만난 수학 선생님 한 분은 우리나라의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셨고 수학에 대한 순수한 학문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에 입학한 후 철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한국의 철학과에서는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아주 다양한 종류의 철학을 가르친다. 서양철학만 해도 고대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 프랑스철학, 사회철학, 현상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가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과학철학을 전공하신 교수님마저도 내가 원하는 종류의 과학철학을 가르치지 않으셨다는 데 있었다. 나는 수학, 물리학과 밀접하게 연계하며 전개된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교수님은 토머스 쿤(Thomas Kuhn) 이후의 자연주의적인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랬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대학에서도 거의 혼자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러셀, 푸앵카레,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괴델, 카르납, 라이헨바흐, 힐베르트 등 20세기 초기의 과학자와 철학자에 대한 글들을 찾아서 읽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학자는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자인 한스 라이헨바흐였다. 그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20세기의 물리학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피상적으로 논의한 것이 아니라 아주 정밀하게 인식론적으로 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정우 선생님이 번역한 책 [시간과 공간의 철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나는 라이헨바흐와 그에 관련된 학자들의 책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시작했고, 이 연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남긴 나의 연구 성과가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라이헨바흐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상대성이론과 선험적 지식], [원자와 우주]를 번역했고, 앞으로 1년에 1권씩 그의 주요저작들을 번역할 계획이다. 나 이후에 과학철학을 공부할 사람들은 나의 번역서들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수학과 물리학 지식을 탄탄하게 갖춘 수학 교사, 물리학 교사, 수학자, 물리학자가 과학철학을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 나는 하나의 주제, 한 사람의 학자에 대해서 깊이 있고 일관되게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나보다 더 뛰어난 라이헨바흐 연구자가 나타나길 바란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라는 이름  (0) 2016.12.13
튼튼이의 탄생  (0) 2016.12.10
자신의 길을 걷는 일  (0) 2016.12.02
평온한 휴일  (0) 2016.11.27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  (0) 20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