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온한 휴일

강형구 2016. 11. 27. 20:06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분명해졌다. 나는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잘 마쳤다.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으로,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성적으로 교육과정을 마쳤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육군 장교 시절에도 나는 조용하고 평범하게 생활했다. 나는 육군 장교 시절 돈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고, 그것이 훗날 사회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밑천이 되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취직 당시 내게 하나의 약점으로 작용하였지만, 운 좋게도 나는 몇 번의 실패 이후 무사히 취직에 성공했다. 대학원에서의 인연으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집값이 비싸지 않은 곳에서 살아 집 걱정도 별로 없다.

  

   직장에서 나는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직원이다. 이는 나의 성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아주 오래 전부터 나타난 나의 특징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공부를 좀 잘 하는 것 이외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 주변의 친구들이 너무 똑똑하고 재능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평범하다 못해 뒤떨어지는 학생처럼 보였고, 이는 대학 시절에도 비슷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세상에는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들에 비하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평범함에 대해서 만족하는 법을,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굽히고 숙이는 법을 배워나갔다.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직장에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이들 사이에서 나는 아주 평범한 직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며, 달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30대 중반의 회사원이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까닭에 민간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며, 매달 최소한의 생활비로 생활하는 월급쟁이다. 나는 수수한 옷차림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다만 나는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2잔 이상 마신다. 또한 나는 공부를 잘하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각종 동영상 강의들을 즐겨 시청한다. 나는 특히 미국에서 운영하는 The Great Courses 사이트와 한국의 KMOOC 사이트를 좋아한다. 이 두 사이트에서는 대학 수준의 훌륭한 강의들을 골라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는 내가 평생교육의 화신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제인 1126일 토요일 저녁에 나는 대구 동성로 거리에 나가지 못했다. 만삭인 아내를 홀로 두고 나 혼자만 거리로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와 나는 어제 저녁 8시부터 1분 동안 집에 설치된 모든 전등들을 껐다가 켰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날리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오늘 아내와 나는 늦잠을 잔 후, 테크노폴리스에 있는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그 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타이 마사지를 받았다. 아내는 배가 불러 마사지를 받지 못하고 내 옆에서 나를 기다렸다. 마사지는 매우 좋았지만, 또다시 비싼 돈을 주고 마사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나 역시 마사지를 한 번 경험해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후 우리는 테크노폴리스의 한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다소 정적인 한 쌍이라, 도서관이나 카페 같은 공간에 자주 방문해서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카페에서 돌아온 나는 아파트 운동센터에서 30분 동안 가볍게 달렸다. 나는 무리하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근육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도 없다. 오늘도 이렇게 평온한 휴일이 저물어간다. 이제 아내와 나는 편안히 주말 드라마를 시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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