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르누아르, [테크노 휴머니즘: 사이보그를 위한 진혼곡]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8. 19. 06:48

 

   도나 해러웨이가 우리는 이미 싸이보그가 되었다는 싸이보그 선언1980년대 중반에 발표한 이후,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포스트 휴먼 시대에, 즉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더 이상 분명하지 않으며 인간과 기계가 서로 공진화(coevolution)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티모시 르누아르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해러웨이의 선언이 예언한 포스트 휴먼 시대의 풍경들이 우리 세대에 이르러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는 이른바 테크노 휴머니즘 즉 기술 시대의 인문주의를 위해서 일반인들 또한 적극적으로 기술적 세계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해러웨이와 유사하게 캐서린 헤일즈 또한 포스트 휴먼 시대에는 신체로 존재하는 것과 컴퓨터 본뜨기 사이에 절대적인 구획 기준 혹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했다. 르누아르는 해러웨이와 헤일즈의 주장하는 내용들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는 이러한 포스트 휴먼 시대에 참여하는 방식이 해러웨이와 헤일즈가 말하는 것처럼 포스트 휴먼적인 새로운 내러티브와 담론의 얼거리(framework)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휴먼 시대를 열고 그것에 참여하는 움직임은 담론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세대 인공지능 연구자에 속하는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의식, 지성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은 오직 기계들의 조합이라며 세계를 일종의 기계들의 집합체로 묘사했으며, 다수의 컴퓨터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고안한 바 있는 대니 힐리스(Danny Hillis)미래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공적인 행위자들과 맺는 공진화적 관계라고 말한다. 레너드 아델만(Leonard Adelman)은 다루기 힘든 수학적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DNA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증명함으로써 분자생물학적 계산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았으며(1994), 오늘날 생체기술, 컴퓨팅, 정보 이론 및 새로운 생체 매개물(bio media)을 서로 결합함으로써 실리콘 기반(Silicon-based)의 계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진화적 로봇공학자들은 유기체가 단순히 뉴런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 기체는 물리적인 환경 한가운데에 등장하며, 감각 지각 기구를 통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유기체의 행동은 유기체의 내적 기제들(mechanisms) 만으로는 결정되지 않으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출현(emergence)한다. 진화적 로봇공학자들은 유기체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념을 로봇을 제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RFID (Radio-Frequency Idification) 체계를 통해 모든 종류의 데이터들을 전송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체계를 통해 휴렛 페커드(Hewlwtt-Packard)가 제작한 웹사이트 쿨타운(Cooltown)’과 같은 사이트들에 접속해서 마치 실재를 서핑하는 듯한경험을 누릴 수도 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예로 게임 비스트(The Beast)’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게임의 배경은 2142년이며, 제작자들(마이크로소프트, 드림웍스)은 이 게임에 각종 복잡한 문제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복수의 참여자들이 협동하여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게임의 특징은 이 게임 안에서 실재와 가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 방식으로 뒤섞인다는 것이다. 게임이 등장한 이후에 이 게임에서 제시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인 규모의 집단 구름 만드는 사람(Cloudmaker)’이 등장했으며, 이 집단은 협동을 통해 게임의 문제들을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제작자들은 더 복잡하고 좀 더 정교한 협동이 요구되는 문제들을 제시했다. 일례로 제작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행사들 속에 게임에 등장하는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단서들을 숨겨 둠으로써, ‘구름 만드는 사람에 속하는 구성원들은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누가, 어디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해야 했다. 단서를 제공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해서, 인터넷 상에 실제와 똑같은 가상의 사이트를 만든다던가 이메일 혹은 팩시밀리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는 실제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군사 게임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실재와 가상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게임 미군(America's Army)’를 들 수 있다. 미 해군에 의해서 개발된 이 게임은 2002년에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었으며, 이 게임에는 실제로 미군이 훈련하는 상황이 뛰어난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 게임에서 제공하는 절차를 통과한 일반인들은, 실제로 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군인들과 온라인을 통해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가상 군사 게임은 군인들을 훈련하는 데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게임이 실제 전장에서의 통제 및 지휘 훈련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 휴먼 시대에는 스타트렉(Star trek)’매트릭스(The Matrix)’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계가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잠식하는 어두운 미래만 그려져야 하는 것일까? 이와는 달리 르누아르는 포스트 휴먼 시대에 휴머니즘의 전망을 보여주는 몇몇 긍정적인 사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 더그 엥겔바트(Doug Engelbart)는 온라인 상의 이용자들의 집적적인 지성적 작업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되고 수정되는 자유로운 백과사전의 개념을 고안하였고, 그 결과 위키피디아가 탄생했다. 2006년 중반 현재 위키피디아는 460만여 개의 기사를 담고 있는 방대한 양의 백과사전으로 성장했으며, 위키피디아의 사용자 또한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르누아르는 온라인을 통한 집적적 지성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한국의 오마이뉴스에서 찾는다. 이는 온라인 참여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경우로, 4만여 명의 시민 기자단이 각종 뉴스 정보들을 제공하면 이를 오마이뉴스의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웹상으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르누아르는 위키피디아, 비스트, 오마이뉴스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똑똑한 군중들의 힘에서 이른바 테크노 휴머니즘의 가능성을 찾는다. 르누아르는, 비록 일반인인 우리들이 인공지능 혹은 인공생명과 관련된 연구 작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인들 또한 포스트 휴먼 시대를 형성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참여를 통해 일종의 휴머니즘을 실천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에세이의 막바지에서 르누아르는 국가 나노기술 진흥회(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에서 과학학자로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포스트 휴먼 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서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참여 또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나노기술은 순수한 과학적 주제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으며, 이 기술이 미칠 사회적윤리적경제적법률적 영향 또한 상당할 것이다. 따라서 나노기술의 발달사를 소개함을 통해 이 기술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고, 이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과학자들이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철학, 윤리학, 법학, 사회학 등)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은 르누아르와 같은 과학학자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들 중 하나이다. 이처럼 르누아르는 포스트 휴먼 시대에 실천하는 일반 대중의 지성적 결집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적어도 그가 제시하는 몇몇 대표적 사례들 속에서 일종의 가능성과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포스트 휴먼적 기술이 인간에게 끼치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력 또한 직시해야 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해부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포스트 휴먼적 기술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과, 그것의 부정적 영향력을 상쇄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