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존스턴, [기계적 생명의 유혹] 요약 정리 04

강형구 2016. 8. 18. 06:56

 

4: 살아있는 세포들- 세포 자동자, 인공생명, 자체생성성(Autopoiesis)

  

   기계가 자체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기계의 자체 재생산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기계의 자체 재생산은 몇 가지의 기본적인 규칙들에 의해서 완벽하게 통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기계의 자체 재생산은 단순한 규칙들에 의해 지배되는 소규모의 기계들이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결합한 결과로, 그러한 집합적인 움직임의 결과로 갑작스럽게 출현(emergence)하는 것일까? 그러한 방식으로 기계들의 집합체가 스스로를 생산해낼 수 있다면, 생명의 자체 재생산 또한 기계들 속에서 보여지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이 대량의 기계들을 비선형적으로 접속시켜서 자체 재생산하는 기계들의 집합체를 만들었다면, 그 집합체가 생명과 유사한 행태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생명이 아닐까? 우리는 또 하나의 생명을 창조한 것이 아닌가?

  

   격자 속의 생명 : 존 폰 노이만은 일련의 논문들을 통해 자체 재생산하는 세포 자동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우선 자동자는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 청사진과 일련의 지침들을 갖고 있어야 하고, 이 청사진과 지침들은 자신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져야 한다. 폰 노이만이 고안한 세포 자동자를 대략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평면 위에 다수의 격자들이 있다. 그 격자들은 각각 유한 상태 자동자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격자가 살거나’ ‘죽는규칙들을 설정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 격자 주변의 3개 이상의 격자들이 살아 있을 경우, 해당 격자는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폰 노이만은 28개의 사는규칙과 1개의 죽는규칙을 도입해서, 세포 자동자가 극도로 복잡한 행태를 나타내며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때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보가 계열적으로(serially)가 아닌 병렬적으로(parallel) 처리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도입을 통해서 폰 노이만의 세포 자동자 개념이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서 구현될 수 있게 되었다. 폰 노이만으로부터 이어지는 세포 자동자를 연구해 온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은 생물학적 생명이란 가능한 생명의 형식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생물학적 생명은 탄소라는 물질에 기반을 둔 생명이지만, 굳이 탄소가 아닌 다른 물질에 기반을 두더라도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랭턴에 의하면, 생명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닌 형식(form)이다. 인공지능(AI)이 여전히 위계적이며 명령-통제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랭턴이 말하는 인공생명(ALife)은 연결주의적인 입장에서 계산을 통해 등장하는 창발적인 속성에 주목한다. 미소 단위들의 행동들이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창발적으로 등장하는 특성들이 곧 생명의 특성이다. 랭턴에 의하면 생명이란 탈중심화되어 있고 비생명적인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창발적이고 상향적인 방식(bottom-up)의 형식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유기화학에서의 매개자가 아닌 다른 매개자, 계산적 매개자를 통해서 스스로를 복제하고 전파한다.

  

   인공생명- 그 첫 번째 정식화 : 이제 인공생명 연구는 단순한 모방의 차원을 넘어선다. 몇몇 규칙들을 따르는 기계들의 군집을 실제로 만들어보고, 그 군집이 어떠한 유형의 행동을 보이는지를 관찰한다. 인공생명의 연구가 수행적(performative)이고 생산적인(productive)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초기의 인공생명을 대표적으로 드러내주는 세 가지의 예가 있다. 그 첫째가 린덴마이어(Lindenmayer) 체계(L-체계)이고, 둘째가 세포 자동자이며, 셋째가 컴퓨터 에니메이션이다. 린덴마이어 체계를 구성하는 규칙들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A에 대해서는 CB로 대체하고, B에 대해서는 A로 대체하고, C에 대해서는 DA로 대체하고, D에 대해서는 C로 대체한다. 둘째 예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보았다. 셋째 예로서는 인공적인 새들의 움직임을 모사하는 에니메이션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에니메이션을 구성하는 규칙들은 단순하다. 다른 대상들과의 최소 거리를 유지하고, 주위에 있는 새들과 속도를 맞추고, 주위 새들을 포함한 집단의 무게 중심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 규칙들에 의거해서 에니메이션을 수행하면, 실제 세계에서의 새들이 보여주는 형태와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다.

  

   혼돈의 가장자리에 있는 생명과 정보 :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정보의 동역학(dynamics of information)이 물리 체계에서 창발하며 이 동역학이 물리 체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랭턴은 이러한 상황에서 복잡성과 생명이 등장한다고 보았으며, 이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가졌다. 물리계에 주어지는 기본적인 규칙들에 따라서, 이 물리계는 완전히 고정된 계에서 주기적인 계로, 주기적인 계에서 혼돈스러운 계로 이행한다. 그런데 주기적인 계에서 혼돈스러운 계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복잡성이 출현한다. 이렇듯 주기성과 혼돈의 사이에 있는 복잡성의 영역이 인공생명 연구에 있어 주된 관심 대상이다. 이 영역은 물리계의 상 변이(phase transition)를 탐구함으로써 규명될 수 있고, 이 결과 우리는 진화 또한 한 계가 생명적 상 변이와 관계 맺는 데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점차적으로 더 많이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체생성성- 자기조직화하는 생명 체계들 : 자체생성성 개념을 제시한 마투라나(Maturana)와 바렐라(Varela)는 하인츠 폰 푀르스터(Foerster)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푀르스터의 소음으로부터의 질서 원리1970년대의 자기조직화 개념을 예견한 것이었다. 또한 푀르스터는 자기 지칭(self-reference)과 관찰자의 역할이 체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기능함을 주장했는데, 이 또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론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마투라나와 바렐라에 의하면, 생명체란 곧 인지체계이며 삶의 과정은 곧 인지의 과정이다. 그들에 의하면 생명 또한 일종의 기계이며, 이 기계는 서로 다른 부분들과 과정들을 통해서 조직화된 하나의 단일체다. 부분들을 구성하는 기계들로 조직된 생명체는 구성물들의 생산적 활동들이 상호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자기조직화하고 자체 생성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자율적 체계와 인공생명 : 바렐라의 세포 자동자는, 기폭제(catalyst)가 있을 경우 구성 요소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자체생성적 단일성이 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고도로 분산된 체계 속의 비선형적 과정들 속에서 역동적인 행위가 출현한다. 이전까지 생명의 면역 체계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지만, 인공생명의 연구로 인해서 면역 체계와 같은 복잡한 체계들에 있어 정보처리 과정과 역동적 행위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암시되었고, 여전히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실리콘 면역 체계와 바이러스적인 생명 : 과연 분자 수준에서 내가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이 면역 체계와 관련된 핵심적인 물음이다. 바렐라는 면역 체계가 자율적인 연결망이라고 생각했다. 면역 체계에 대한 물음을 기계적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어떻게 기계들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프로그램 없이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파머(Farmer), 패커드(Packard), 페렐슨(Perelson)은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아주 단순화된 면역 체계를 컴퓨터에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현대에 이르러 재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 몇몇 해커들은 대규모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공략하기 위한 바이러스를 제작하고,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백신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복잡하게 진화된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이 바이러스를 제압하기 위해 좀 더 복잡한 백신이 제작된다. 이는 일종의 군비 경쟁과 유사한 면모를 보였다. 제프리 케파트(Kephart)의 경우,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더 이상 이전까지의 백신 프로그램 제작 방식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백신 프로그램은 생물에서의 면역 체계를 본딴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고도로 복잡하게 적응적인 체계들은 순수한 자연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세계에서도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