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존스턴, [기계적 생명의 유혹] 요약 정리 02

강형구 2016. 8. 16. 06:58

 

상상, 상징, 실재가 혼재하는 주체혹은 기계’ : 정신분석학과 사이버네틱스

 

존스턴(Johnston),기계적 생명의 유혹(The Allure of Machinic Life)2

 

1. 라깡(Lacan)의 정신분석학 개요

  

   인간이 아닌 대부분의 다른 생물들은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에서 독립적으로 행위한다. 갓 태어난 강아지도 그렇고, 번데기를 깨고 나온 나비도 그렇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은 발정기와 번식기가 정해져 있고, 이 기간 동안에만 생식의 욕구가 발동하며 생식기관을 사용해서 번식 활동을 한다. 비인간적인 생물들은 자연적 세계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실재와 비인간적 생물들 사이에는 생물들 자신의 신체 이외에는 별다른 매개자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모든 생물들 중 가장 긴 유아기간을 가지고 있고, 이 긴 유아기간을 통해 보호받고 영양을 공급받을 뿐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언어(혹은 언어의 사용 능력)를 내면화한다.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의 성감대는 생식기관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달리 생물학적 욕구 뿐만 아니라 욕망 또한 가진다. 욕구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성욕은 특정한 주기를 갖는게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욕망의 강도에 따라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자아, 주체, 욕망이라는 개념은 모두 인간이 상징적 동물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를 작동시키고 있는 언어적 질서(linguistic order), 상징적 질서(symbolic order) 속으로 편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 원초적인 사랑의 대상은 어머니이다. 이 때 어머니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긴 유아기간 동안 아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의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이 때 이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제공해주는 인간이 아이에게는 사랑과 욕망의 원초적 대상어머니이다. 아이가 점점 자라고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아이는 자신이 어머니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미 사회의 상징적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는 어머니는 다른 언어적 주체들과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기능하고 있고, 그 속에서 이미 다른 사람(‘아버지’)의 소유가 되어 있다. 아이는 언어적 질서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자식으로서어머니를 사랑하고, 이 때 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던 원초적 욕망, 원초적 사랑은 은폐되고 억압된다.

  

   ‘주체(subject)로서의 나는 기본적으로 말하는 나이다. 그러한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이로서의 나, 가족들 중의 일원으로서의 나, 학교의 학생으로서의 나, 키가 얼마이고 성격이 어떠한 나, 성적이 몇 점이고 등수가 몇 등인 나 등등으로 정의된다. 내가 말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적 질서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숱한 개념들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상징계 속으로 편입되면서 자아로서의 나는 일종의 소외를 경험한다. 왜냐하면 존재로서의 나는 결코 말하는 나’, ‘주체로서의 나로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체로서 상징계로 편입되지만, 이러한 편입은 늘 소외를 함께 불러 일으키며 이 소외는 자아에게 모종의 결핍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은 인간이 갖는 갖가지 욕망의 원인이 된다.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분절되고 혼재된 욕망과 지각을 갖고 있던 아이는 언어적 질서로 편입되기 전 거울단계를 통해 상상계(the imaginary)’를 경험하게 된다. 어떤 완전하고 완결된 이미지를 갖는 통일적인 자아에 대한 환상과 욕망, 이러한 자아를 통해 자신의 원초적 사랑의 대상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아이로 하여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게끔 유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계(the symbolic)’로의 편입존재주체사이의 균열 속에서 소외를 일으킨다. ‘소외로부터 발생한 결핍, ‘상징적 질서그 자체는 자아의 모든 것을 포섭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는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기만하도록 만든다. 주체는 상징적 질서 속에 포섭된 여러 사물들 중 몇몇 사물들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데, 이것이 곧 환상의 대상이며 주체는 이 환상의 대상으로 자신의 결핍을 대리보충하지만, 환상의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유동적이기 때문에 욕망은 끊임없이 요동친다.

  

  라깡 정신분석에 있어 실재(the real)’는 늘 부정적인 것으로 현상한다. ‘원초적인 욕망과 사랑의 대상인 실재, 인간의 모든 기호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실재는 그 실재를 포착하려 하지만 결코 포착하지 못하는 상징적 질서의 실패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감지되며 주체로 하여금 끊임없이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상징적 질서에 온전히 현상할 수 없지만 상징적 질서를 작동하게 만드는 원인으로서의 실재, 인간의 공동체를 형식적이고 규칙적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상징계, 그리고 인간이 상징계에 편입될 수 있게 유혹하고 정상적으로 상징계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인간을 기만하고 왜곡하는 상상계는 모두 말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혼재되어있다. 라깡은 실재, 상징계, 상상계 사이의 관계를 독특한 그래프를 통해 나타낸 바 있는데, 이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라깡의 정신분석학에서 언어적 질서인 상징계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껏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은 라깡이 말하는 상징계의 정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하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라깡의 상징계는 쏘쉬르 이후의 구조주의 언어학, 그리고 이후 프랑스에서 부흥하게 되는 구조주의 운동과 관련되어 논의되었다.

  

   라깡이 말하는 상징계, 상징적 질서가 사이버네틱스에서의 기계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이해될 수 있다는 통찰, 이러한 새로운 통찰과 함께 존스턴은 자신의 책 2장을 시작한다.

  

   위너사이버네틱스7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특수한 강박적 신경증의 경우 약물이나 수술을 통한 치료가 불가능하며 정신분석적 기법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정신분석에서의 분석개념이 사이버네틱스의 개념들과 일맥상통한다는 견해를 보인다. 위너는 정신분석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대신 정신분석이 정보, 의사소통, 되먹임의 언어를 통해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스턴에 의하면 위와 같은 사이버네틱스의 언어를 통해 정신분석을 새로 구성한 인물이 바로 라깡이다. 라깡은 사이버네틱스의 기계 개념과 정보 이론에서 등장하는 이진법적 언어의 개념을 통해 자신의 상징적 세계’, ‘상징적 질서를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 기계와 상징적 질서

  

   라깡은 상징적 질서에 늘 부정적으로 현상하는 실재’, 그 실재를 추측하는 과학인 정신분석학을 추측의 과학(conjectural science)’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라깡이 그의 논문 정신분석과 사이버네틱스에서 사이버네틱스 또한 새로운 종류의 추측의 과학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라깡에 의하면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우리는 상징적 과정의 자율성이 가능함을 최초로 이해하게 되었다. 존스턴은 라깡이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구성함에 있어 당대의 새로운 기계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내적 통제 메커니즘을 통해 스스로의 기능을 통제하는 기계, 구성 물질과는 상관 없이 논리 만으로 작동하는 계산 기계 등 새로운 종류의 기계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특히 라깡이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것은 튜링기계(Turing Machine). 읽고 쓸 수 있는 헤드(Head), 기록 매체인 테잎(Tape), 읽고 쓰는 데 쓰이는 지침들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튜링기계는, 사각형의 칸에 표시를 하거나, 표시를 지우거나, 칸을 건너 뛰거나,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칸을 옮기는 작용을 통해서 각종 계산적인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때 튜링기계가 갖고 있는 무한한 양의 기억장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왜냐하면 무한한 기억장치가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단순한 연산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굉장히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튜링기계는 알고리즘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계산을 수행할 수 있으며, 모든 특수화된 튜링기계들을 모사할 수 있는 범용 튜링기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튜링의 추측은 범용기계로서의 컴퓨터가 등장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튜링의 범용기계는, 추상기계는 그 기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특성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와는 독립적인 상징체계(독립적인 규칙과 구문론을 갖고 있는)에 의해 정의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기계들이 자동화되고, 형식적 체계를 통한 작동(operation)들이 조합의 규칙에 따라 결합해서 더 복잡한 작동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현실화되면서, 마치 근대의 시계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기계들 또한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라깡이 말하는 상징적 세계는 기계들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세계다. 언어, 정보, 언어와 정보에 반응하고 다시 그것들을 생산해내는 세계가 바로 상징의 세계다. 그런데 상징의 세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보다 더 상위의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상징적 질서이며 이 질서가 출현하는 곳은 상상의 세계, 곧 상상계이다. 상징의 세계에서는 오직 언어, 기호, 정보들만이 순환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현상적인 이미지들이 출몰하며 인간의 의식은 가끔씩 이 현상적인 이미지들 위에 반영될(reflect) 뿐이다. 라깡은 주체에게 있어 라는 자아가 일종의 환상이라 주장한다(상상적 동일시). 자아는 의식이 아니다. 의식이란 물리적 현상에 불과하며, 인간은 이 물리적 현상을 책임지는(responsible) 행위자(agent)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상징적 세계에 반영된 서로 다른 자아의 이미지들이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징적 질서, 상징적 규율이 필요하다. 만약 상징적 세계 속에서 를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불규칙하고 병리적인 방식으로 순환한다면, 이는 상징적 세계를 통해 은폐된 실재와 관계하고 있는 나의 무의식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라깡은 상징적 세계와 상상적 세계를 기술하는 데 있어 사이버네틱스의 기계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라깡이 사이버네틱스로부터 받은 영향은 라깡이 실재로부터 상징적 질서의 출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3. 주체의 기계화

  

   라깡은 자신의 세미나에서 실재가 상징적 질서 속으로 어떻게 암호화되는지를 단순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두 아이가 서로 짝수/홀수 맞추기 게임을 한다. 아이 A가 아이 B의 손에 있는 구슬의 갯수가 짝수인지 홀수인지를 추측하고, 답이 맞을 경우 AB의 구슬을 갖는 반면 답이 틀리는 경우 A는 자신의 구슬을 잃게 된다. 짝수/홀수인 확률은 각각 1/2이고, 아이 둘 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키지 않는 똑똑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항상 A가 답을 맞출 확률은 1/2으로 불변한다. 하지만 이런 무작위적인 게임의 결과를 기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답을 맞출 경우를 +, 틀릴 경우를 -, +++ 혹은 ---‘1’, ++- 혹은 --+ 혹은 -++ 혹은 +--‘2’, +-+ 혹은 -+-‘3’으로 기록하면, 이 기록들이 축적되어 가는 동시에 이 기록들을 지배하는 질서가 출현(emerge)한다. , 실재와는 무관한 상징들의 배열이 질서를 불러 일으킨다. 무작위적 사건들도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하면 이에 따라 기초적인 질서가 등장하게 되고, 이 질서가 뒤따르는 계열들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기록함으로써 상징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의 힘이 생산된다.

  

   이 예를 통해 라깡은 다음의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상징적 질서는 자율적이며 자기조직화한다. 둘째, 이 상징적 질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주체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주체는 상징적 질서를 통해 순환하고 교차하는 상징적 기호들 속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라깡의 생각은 그가 포(Poe)의 소설인 도둑맞은 편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잘 드러난다. 여왕은 은밀한 내용(메세지)이 담긴(하지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는) 편지를 한 통을 받는데, 이 편지는 왕에게는 알려져서는 안 된다. 여왕과 관계된 내막을 눈치채고 있는 장관은 여왕과 왕이 보는 앞에서 여왕의 편지를 훔치고, 이 사실을 왕은 모르지만 여왕은 안다. 여왕은 편지를 찾기 위해 경찰을 동원해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장관은 이를 미리 짐작하고 편지를 뻔히 공개되어 있는 장소에 둠으로써 경찰의 검색을 피해간다. 하지만 형사 뒤팽은 이를 파악하고 장관의 편지를 가져간 후 편지를 여왕에게 돌려준다. 이 이야기에서, -여왕-장관의 관계는 이후 경찰-장관-형사(뒤팽)의 관계로 전환되는데, 이 때 이러한 각각의 주체들의 자리를 위치 짓게 하는 것이 바로 편지, 기호, 메시지의 순환이다. 상징적 질서를 통해서 움직이는 기호의 순환, 그 안에서만 주체들은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존재와 부재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실재를 수로 기록하면서부터(있다, 혹은 없다) 구문론적 질서가 출현하고, 이 질서는 이후 뒤따르는 가능한 조합들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 상징적 질서는 인간의 의식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작동하며, 상징적 질서의 통제 아래에서 주체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기호의 기록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성된 구문론적 질서가 주체의 위치를 가능하게 만들고, 이는 곧 주체의 주체성을 가능하게 한다.

 

4. 계산적 매체 : 새롭게 등장한 담론의 연결망

  

   존스턴은 라깡이 사이버네틱스의 기계 개념을 정신분석하는 것이 단지 은유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계의 개념이 라깡 정신분석 담론의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함을 보이고자 한다. 매체이론가 키틀러(Kittler)는 라깡의 정신분석과 사이버네틱스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에 의하면 라깡의 세 세계 이론(실재, 상징계, 상상계)20세기 초기의 기계적 발전을 반영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라깡이 말하는 실재는 축음기를, 상상계는 영화를, 상징계는 계산의 영역 및 주체화된 정보 기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 라깡은 동시대의 매개성 조건(condition of mediality)에 따라 심적 장치들(psychic apparatus)을 재정의한 것이다. 존스턴은 이러한 키틀러의 해석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과 라깡의 이론을 동시대의 산물로 간주하는 키틀러의 주장에는 거부한다. 존스턴에 의하면 라깡은 프로이트와는 다른 종류의 담론 연결망에 속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범용 튜링 기계, 사이버네틱한 되먹임 기제를 사용하는 정보 기계 등 새로운 기계들은 계산적 조합이라는 담론의 연결망을 새롭게 구성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새로운 담론의 연결망은 이후 생물학, 유전학, 언어학을 포섭하기에 이른다. 존스턴은 이 연결망이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에도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이고자 한다.

 

5. 언어와 유한상태(Finite-State) 자동자

  

   마르코프(Markov) 연쇄란 분절된 시계열을 통한 통계/확률적 과정의 일종이며, 메시지는 이 과정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 처음에는 의미를 갖지 않던 메시지가 마르코프 과정에 관련된 확률값이 증가하면서 식별가능한 메시지로 변환하는 것이다. 라깡은 자신의 세미나에서 이러한 마르코프 연쇄를 언급하면서, 만약 타자의 담론, 상징계의 질서가 상징계에서 의미가 출현하게끔 만드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원천이라면, 이 질서는 마르코프 과정의 특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추측한다. , 그는 상징계에 등장하는 언어, 기호, 정보들을 생산하는 기계가 일종의 마르코프 과정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라깡은 상징적 질서를 사이버네틱 회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았으며, 이 회로는 일종의 유한상태 자동자로서 기능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라깡이 자신의 논의에 사용했던 그래프를 보면, 그의 그래프는 당시 계산 및 자동자 이론에서의 그래프와 매우 유사했음을 알 수 있다.

  

   라깡은 상징적 질서를 언어와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상징적 질서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와 함께 작동하는 무엇으로 생각했다. 라깡은 상징적 질서의 작동이 언어의 작동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으며, 그에 의하면 상징적 질서의 작동은 유한상태 자동자의 문법을 통해 완전히 서술될 수 있다. 라깡은 더 복잡한 자연언어의 경우 유한상태 자동자를 통해서는 서술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촘스키(Chomsky)의 언어 이론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촘스키는 유한 자동자가 규칙적 언어들만 생산할 수 있으며, 더 복잡한 언어들의 경우에는 유한 자동자보다 더 복잡한 기계(예를 들면 튜링 기계)를 통해서 생산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요는 라깡이 사이버네틱한 기계의 개념을 자신의 이론에서 단지 은유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깡의 정신분석에서 상징적 세계는 곧 사이버네틱한 기계의 세계였던 것이다.

 

6. 추측의 과학이 실재를 재정의한다

  

   라깡은 실재로부터 상징적 질서가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XOR 논리 게이트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는 더하기와 곱하기를 하는 논리 게이트를 복수의 배열로 결합함으로써 정보가 저장되고 구문론적 질서가 출현함을 보인다. 라깡은 실재에 상징이 기록됨으로써 상징적 질서가 출현하고, 이 질서는 이 질서에 종속되는 주체와는 무관하게 작동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뉴웰(Newell)과 사이먼(Simon)물리적 상징체계 가설로 요약될 수 있다. , 상징을 처리하는 기계는 그 작동에 있어 그것의 물질적 담지자의 본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깡은 실재로부터 출현된 상징적 질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자연현상(혹은 실재)과 달리 엔트로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감소시키면서 차이를 보존하고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라깡은 상징적 세계에 출현하는 모든 의미들이 일종의 질서, 구문론을 전제한다고 보았다. 비록 모든 의미들이 정확하게 구문론으로 환원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일상적인 담론에는 상징계와 상상계가 혼재되어 있다. 우리 인간은 상징계에서 작동하고 기능함과 동시에 상상계의 질서 속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깡은 사이버네틱스 회로가 상상계를 배제한 상징적 질서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내 준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사이버네틱한 기계는 인간이 수치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상징적 질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증거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실재와 상징계 사이의 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실재의 세계는 우연, 확률, 무질서의 세계다.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실재의 세계를 존재와 부재, 01의 언어로 기록하면서부터 질서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실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인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물질 위에 부여된 상징은 점차적으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게 되어 자기조직화의 능력 및 자율적 질서를 획득하게 되고, 이후 인간이 그 속에 편입되어야만 하는 강력한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는 문제가 있다. 과연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상징적 질서에 편입되고 타자들과 관계 맺기 위한 일종의 언어-기계가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언어-기계적 메커니즘에는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전복시키려고 하는 욕망들 또한 혼재되어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인간을 기계와 구분하는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 어려움 앞에서 라깡 또한 불가능성만이 인간을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7. 기계와의 놀이 : 카스파로프(Kasparov) 대 딥블루(Deep Blue)

 

   라깡은 자신의 세미나에서 인간이 기계와 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의문을 던졌다. 그의 이런 의문은 세계 체스 챔피언인 카스파로프와 딥블루 사이에 벌어진 체스 경기를 통해 극적으로 실현되었다. 19962월에 벌어진 대결에서는, 첫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결 전체를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19975월에 벌어진 대결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발생했다. 딥블루는 첫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에게 패했지만, 결국 이후의 경기들에서 우세를 보여 대결 전체를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존스턴은 이 경기를 단순히 인간 대 기계에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경기의 내용 자체를 라깡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1996년에 벌어진 첫 번째 대결의 첫 경기에서 패한 카스파로프는, 미리 앞의 몇 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수를 펼치는 데 있어 자신이 딥블루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최대한 수비적인 입장을 취했다. 딥블루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두는 수에 반응적으로 대응하는 데 능했기 때문에, 수비적인 입장을 취하는 카스파로프를 딥블루가 공격할 경우 몇 개의 무용한 수들을 둘 것이고, 카스파로프는 이러한 딥블루의 실수를 이용해서 승리를 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카스파로프의 이러한 전략은 유효했고 결국 그를 첫 대결의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두 번째 대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대결의 첫 번째 경기에서는 카스파로프의 이전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매우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딥블루가 여왕 말을 이용해서 강하게 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딥블루는 2분 동안이나 고민하더니 겨우 졸() 하나를 움직이는 수세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딥블루의 반응에 카스파로프는 매우 당황했고, 딥블루가 마치 사람처럼 직관을 가지고 체스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카스파로프는 경기 중간에 딥블루가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딥블루가 실수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스파로프는 경기들이 진행될수록 지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끝내 두 번째 대결에서 패하고 만다.

  

   이러한 카스파로프의 반응에 대한 존스턴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대결의 두 번째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는 딥블루에 대해서 착각했다. 딥블루는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만 카스파로프의 전략을 모방하고 학습한 것이다. , 카스파로프를 패배로 몰아간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딥블루에 대해서 사용했던 전략이었던 것이다. 카스파로프와 딥블루의 경기는 사각형이 그려져 있는 판 위에서, 말들이 특정한 규칙들을 지켜가며 움직이는 기호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이 경기와 딥블루에 대해 상징계의 차원이 아닌 상상계의 차원에 속하는 그릇된 환상을 갖게 됨으로써 결국 경기에 패하고 말았다. 카스파로프와 딥블루의 경기는 인간 대 기계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경기는 실재, 상징계, 상징계가 혼재하는 이질적 종합이 벌어지는 곳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2장의 막바지에서 존스턴은, 라깡이 적극적으로 인간 자신에 대한 물음을 제시했으면서도 라깡이 가졌던 한계를 지적한다. 라깡은 자체 재생산하는 기계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계의 자체 재생산 개념은 이미 폰 노이만의 논문에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산속도가 매우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딥블루의 학습 능력은 굉장히 미미했던 반면(그런 의미에서 딥블루는 2차대전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의 인공지능의 경우 진화 그 자체를 이용하고 모방하는 진화적 프로그래밍을 사용한 결과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보이면서 이후의 논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 장을 끝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