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존스턴, [기계적 생명의 유혹] 요약 정리 03

강형구 2016. 8. 17. 06:54

 

 

3: 기계적 철학- 조합(Assemblages), 정보, 혼돈스런 흐름

  

   사이버네틱스의 등장으로 인해 자연을 표상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사이버네틱스적인 기계의 개념을 갖고 다시금 자연을 정의하는 것, 혹은 자연을 (사이버네틱스에서의) 기계적으로 표상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연, 기계, 인간을 이전까지의 선형적(linear)이고 결정론적(deteministic)인 인과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구식이 되어버렸다. 존스턴은 라깡이 사이버네틱스의 기계 개념을 도입해서 상징적 세계, 상징적 질서를 설명한 공로를 인정하지만, 라깡은 새로운 개념의 기계적 질서가 보여주는 무작위적 조합의 현상을 포섭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라깡의 개념적 도식은 현대적인 여러 현상들을 포섭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존스턴에 의하면, 현대적 현상들을 포섭할 수 있는 최신의 개념적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은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atari)이다.

  

   조합의 이론(The theory of Assemblage) : 들뢰즈와 가타리는 공동 저술한 그들의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에서 기계의 개념을 제시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기계란 서로 이질적인 부분들이 조합하고, 이러한 조합을 통해서 물질, 에너지, 기호가 유통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관점에서는 지구 위의 모든 현상들이 기계적이다. 빤질한 지층이 있으면, 그 지층 위에서 서로 다른 기계들이 힘겨루기를 한다. 자신들이 소속된 영역으로 표시하고, 자신과 다른 타자를 자신으로부터 구분짓고 경계짓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빤질했던 지층에는 주름이 잡히고 줄이 그어진다. 그리고 이 주름잡히고 줄이 그어진 지층 위에 물질, 에너지, 기호들이 유통하는 것이다. 지층 위의 주름과 줄은 일종의 문화와 질서를 의미하지만, 이 문화와 질서는 영속적이지 않으며 늘 유동적인 특성을 띤다. 힘들 사이의 차이, 경쟁, 유희를 통해 빤빤하고 빤질한 평면은 늘 새롭게 줄이 그어지고 주름이 잡힌다.

  

   생물학적 조합(Biological Assemblage) : 존스턴에 의하면 들뢰즈, 가타리의 기계 개념은 사이버네틱스에서의 기계 개념과 유사하다. 기계들의 영토화, 탈영토화 과정은 기계적이고 자기조직적, 자기통제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생물들 또한 일종의 기계인가? 생물의 형성, 증식, 진화의 과정 속에서도 사이버네틱한 기계의 개념이 적용되는가? 존스턴은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면서, 이를 예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DNA 분자의 예를 제시한다. DNA의 정보를 구성하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는 서로 상보적인 방식으로 조합(assemble)하여 유전 정보를 구성하면서, 이와 동시에 자체 생성 과정 속에서 변이 가능한 요소를 포함함으로써 유전 과정 내부에 이질적인 요소가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역할을 담당한다. DNA 분자의 작동 방식을 사이버네틱스적 개념들로 분석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생명 또한 일종의 자기복제하는 기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라는 원시종(, phylum) : 모든 자연적 현상을 기계적 현상으로 이해함으로써, 생명 또한 더 광범위한 기계의 범주에 포함된다. , 생명이라는 종이 기계의 종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명이라는 종 또한 다른 모든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기계라는 원시 종으로부터 변이하고 변화된 결과 발생한다. 이렇듯 기계의 개념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현상들이 기계의 원시 종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따라서 인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기계 종이 진화해 온 궤적을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기술은 인간이 창조하고 발명한,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에게 전적으로 존속되어 온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의 기계 종이듯, 물질화되고 기계화된 기술 그 자체도 하나의 기계 종으로서 독자적인 논리를 통해 진화해 온 것이다. 물론 이 때 인간과 기술은 각기 독립적인 종들로서 서로 상호작용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대표적인 저자가 데란다(Delanda)이다. 그는지능적 기계 시대에서의 전쟁(War in the Age of Intelligent Machines)천 년 동안의 비선형적 역사(A Thousand Years of Nonlinear History)에서, 인간 뿐만 아니라 기계와 기술 또한 독자적 진화의 역사를 따라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탐사기(probe)의 실리콘 머리(head) : 기계 종과 기계적 과정의 비선형적 진화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것은 최근의 카오스 이론이다. 기상학자 로렌츠(Lorentz)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기상 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던 도중, 아주 미소한 초기 조건의 차이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거시적인 현상의 차이가 생성된다는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나비효과의 발견이다. 로렌츠는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서술된 특정한 현상에 대해서도, 그 결정론적인 수식들에 대입하는 입력값에 아주 미소한 차이를 줄 경우, 그 현상이 예측불가능성을 갖게 됨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이른바 로렌츠의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를 발견한다. 일군의 학자들이 이 이상한 끌개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이상한 끌개의 중요한 특징들을 분석함으로써 이 끌개로부터 발생하는 혼돈적인 현상을 분석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무질서한 혼돈 현상을 일정한 질서를 통해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정보이론이다.

  

   이상한 끌개와 정보의 흐름 : 정보의 개념이 혼돈 현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섀넌은 볼츠만의 엔트로피 공식을 이용하여 정보를 음의 엔트로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3개의 물체로 이루어진 계를 기술하는 경우에도 일정 정도의 불확실성을 말소시킬 수 없음을 증명했다. 이후 쇼(Shaw)는 여러 물체로 이루어진 동역학적 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계들을 보존적인(conservative) 계와 이산적인(dissipative) 계로 나눌 수 있음을 보였다. 다체계 동역학적 계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엔트로피의 개념이 도입되고(볼츠만에 의해서), 정보 또한 일종의 엔트로피(음의 엔트로피)라면, 정보의 개념을 통해서 다체계 동역학계가 혼돈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석할 수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다체계 동역학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정보와 혼돈 현상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는 혼돈적인 계의 모형이다 : (Shaw)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보여주는 유형이 혼돈적인 계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는 데에 주목했다. 그의 분석 결과에 의하면 엔트로피란 미시적 변수에서 거시적 변수로 흘러가는 정보의 정도이다. 정보가 최대로 저장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예측가능성이 상실되었거나 최대의 엔트로피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쇼는 혼돈적인 끌개의 개념이 들뢰즈/가타리의 추상 기계 개념의 개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들뢰즈/가타리에 의하면, 추상기계는 물질-에너지와 추상적인 수학적 함수의 영역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추상 기계의 개념과 혼돈적인 끌개의 개념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혼돈적인 끌개의 경우 결정론적인 세계 속에서 비선형적 현상의 복잡성을 보존하는 기능을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의 추상기계는 급진적이고 탈영토화하는 효과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복잡성의 척도, 입실론(

)-기계의 재구성 : 크러치필드(Crutchfield)는 복잡성을 측정하기 위해서 그에 계산적으로 상응하는 기계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방법으로 복잡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이고 도구적인 혁신이 필요했는데, 이는 계산적인 개념들을 동역학 체계에 적용하고 기계들 그 자체를 통계역학적으로 기술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 방법을 추구함에 있어, 끝내 크러치필드는 새로운 계산적 모형을 창안함으로써, 특정한 물리적 과정 속에서 복잡성이 출현(emergence)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보 이론과 혼돈 이론, 다체계 동역학계 이론을 통해서, 질서가 없을 것 같은 혼돈적인 현상을 측정하고 이를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볼 점 :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계, 영토화/탈영토화, 지층화 개념을 사이버네틱스의 기계 개념과 결합해서 세계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혼돈적인 현상을 서술하려는 존스턴의 시도가 돋보인다. 기계는 서로 이질적인 각각의 요소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에너지, 물질, 기호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이 흐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기계들이 형성된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적 틀 속에서 생명의 진화 현상, 기계 종의 진화 현상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 존스턴은 기상학과 물리학에서 발견된 혼돈적 현상을 사이버네틱스적 기계, 정보이론을 도입해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존스턴은 초기 사이버네틱스와는 개념적으로 공약불가능한, 혹은 전혀 다른 개념의 자동자와 인공지능이 탄생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예비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 많고 복잡한 내용을 개략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독자의 이해 정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의 철학, DNA의 복제 및 재생산 방식, 로렌츠의 이상한 끌개 이론, 물방울 떨어짐에 대한 쇼의 분석 등은 모두 한 장을 차지하면서 자세히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인데, 존스턴은 이 모든 내용들을 한 장 안에서 모두 설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그는 조합(Assemblage)’의 개념을 손수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합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피상적인 서술은 독자들에게 논의의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존스턴이 엔트로피 개념과 다체계 현상 사이를 결합해서 복잡성을 측정할 수 있음을 서술하는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이 장의 내용이 2장의 내용과 어떤 식으로 연관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