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10: 공간 - 고전적 논쟁

강형구 2016. 3. 25. 06:54

 

10: 공간 - 고전적 논쟁

(Space : the classical debate)

 

10.1. 마지막 마법사

    이제 고전적인 뉴턴 역학의 맥락에서 운동과 공간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이 논쟁에서 뉴턴은 실체론자, 라이프니츠는 관계론자,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는 두 입장 사이에 위치한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뉴턴은 역학의 포괄적 이론, 보편중력 이론, 미적분학을 발전시켰다. 원리(프린키피아)에서 제시된 절대적이고 실체론적인 공간 개념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절대적 시공간과 상대적 시공간, 참된 시공간과 겉보기 시공간, 수학적 시공간과 일상적 시공간을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절대적 공간은 그 본성상 외부의 것과 관계없이 항상 비슷하고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리고 절대적인 운동이란 절대적인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이다.

  

   뉴턴은 일상생활에서 대개 상대적인 위치와 운동을 다룬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사물들의 운동을 기술하고, 배 위에 있는 사람은 배를 기준으로 사물들의 운동을 기술한다. 하지만 뉴턴은 모든 기준계가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턴에 따르면 사물들의 실재적인 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특권적인 기준계가 존재한다.

  

   뉴턴의 절대공간은 무한하고, 완벽하게 균일하며(uniform), 유클리드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갖는다. 절대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완벽하게 실재하며 그 고유의 권리를 갖는 개체이다.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절대공간 개념에 반대하고, 공간이란 그저 상대적인 것이며 공존하는 것들의 질서일 뿐이라고 보았다. 뉴턴은 종교적이었으며 헌신적인 유니터리언이었다. 그는 연금술과 수비학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연구를 통해 신을 해부하고자 했다.

  

   하지만 프린키피아에서 제시된 뉴턴의 논증들은 전적으로 과학적이었다. 물체들의 진정한 운동을 겉보기 운동가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뉴턴은 프린키피아를 통해 그러한 구분을 제시하고자 했다. 프린키피아는 관측된 물질적 사물들의 행동을 충분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실재적 운동과 상대적 운동의 구분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뉴턴은 경험적 근거만으로 절대공간의 존재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장에서는 갈릴레오와 데카르트가 제시한 시공간 관련 원리들을 살펴보고, 실체론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논박을 살펴볼 것이다.

 

10.2.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두 주요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1623)에서 지구가 매일 자전하고 매년 공전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상식 및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근거한 반론을 극복해야 했다. 상식에 근거한 반론이란 다음과 같다.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관찰가능한 여러 귀결들이 일어나야 한다. , 물체들이 쏠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거나, 새가 특정한 방향으로 날아가는데 애를 먹거나, 탑에서 떨어뜨린 물체는 비스듬히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귀결들은 실제로 관찰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이러한 일상적인 직관에 잘 부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물체에게는 그 고유의 장소가 있고, 물체가 자기 고유의 장소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자연운동이다. 5원소인 에테르(ether)로 구성된 천상계 물질은 자연운동이 원운동이고, , , 공기, 불은 순서대로 무겁고 가벼운 원소들이어서 지상계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 상하운동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 지구는 무거운 흙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고정되어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부자연스러운 운동의 경우, 그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별도의 힘을 가정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 등장한 자연원운동 개념을 확장했다. 갈릴레오에 따르면 화성에서 떨어뜨린 물체는 화성 중심으로, 지구에서 떨어뜨린 물체는 지구 중심으로 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갈릴레오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큰 배가 정지해 있을 때 배 위의 사물들이 움직이는 것은, 배가 균일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와 구분할 수가 없다. 배가 움직이고 있다면 배 위의 사물들 또한 그 움직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의 경우를 지구로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배의 예는 갈릴레오의 불변성 원리를 나타낸다. , 운동의 법칙은 상대적으로 등속 운동하는 기준계들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갈릴레오는 관성의 원리 및 투사체 운동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관성의 원리란 물체가 한 번 움직이면 외력에 의해서 강제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운동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들 중 첫 번째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원형관성원리, 즉 모든 지구상의 물체들은 원형운동을 하려는 자연적 경향이 있다는 원리를 채택했다. 갈릴레오는 사고실험을 통해 일정한 속도로 지평선을 따라 운동하는 물체는 운동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때의 지평선은 지구와 같은 원형이었다. 원형관성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원운동원리의 일반화였다.

  

   갈릴레오는 투사체 운동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갈릴레오는 낙하거리가 낙하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낙하법칙을 발견했고, 이를 원형관성원리와 결합하여 투사체의 궤적은 포물선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때 그는 투사체 운동을 서로 독립된 성분 운동들의 결합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갈릴레오의 분석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갈릴레오가 보여준 것은 모든 물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운동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는 것, 이 운동은 어떤 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0.3. 데카르트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작업할 당시에는 데카르트의 물리학이 지배적이었고, 뉴턴 역시 데카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데카르트는 저서세계(The World)(1633)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을 전면 부정하고 역학적 용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두 가지 구성 성분(물질과 운동) 및 세 개의 근본원리(관성 원리, 물질 보존 원리, 운동 보존 원리)로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자 했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의 원형관성원리를 거부하고, 직선운동을 하고자 하는 직선관성원리를 옹호했다. 역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데카르트는 우주를 무한히 넓고 물질로 가득 차 있는 공간으로 보았다. 그는 우주 안의 물질이 운동을 해서 생기는 공백은 다른 물질이 운동을 통해 메우고, 이런 운동을 통해 원형 소용돌이가 생긴다고 보았다. 이런 소용돌이들의 중심에는 항성이 있고, 태양은 그런 항성들 중의 하나였다. 이렇듯 데카르트 물리학에서는 뉴턴 물리학의 핵심 구성성분들이 등장했다. 관성의 원리, 보존의 원리, 세계에 대한 역학적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 적어도철학 원리에서 데카르트는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운동을 얘기하지 않는다. 모든 운동은 다른 물체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운동이 일어나는 데카르트적 세계에는 고정된 점이 없다. 단지 우리가 고정되어있다고 간주하는 점이 있을 뿐이다. 오직 규약을 통해 어떤 특정 사물이 정지해있다고 간주해야만 물체가 실재로 운동하고 있는지 아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규약적 입장을 통해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와 달리 지구가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데카르트는 절대운동과 상대운동이라는 상반된 두 개념의 토대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10.4. 라이프니츠

    1715년 경에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제시한 절대공간 개념에 대해 반박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 물리학이 갖는 2개의 함축을 지적했는데, 각각의 함축은 감지될 수 없는 이동(shift)을 추정한다.

  

   우선 정적 이동(static shift)’을 살펴보자. 절대공간에서 모든 것이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우주의 위치만 남쪽으로 1억 킬로미터 변경되어도 두 우주 사이에 분별 가능한 차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운동학적 이동(kinematic shift)’을 살펴보자. 만약 절대공간에 대해 우주가 북동쪽으로 등속운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에도 우주의 운동 전과 운동 후 사이에는 분별 가능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뉴턴이 옳다면 각각의 갈릴레오 기준계는 절대공간에 대해 특정한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두 개의 갈릴레오 기준계가 있을 때 두 기준계의 절대운동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이나 보편중력 법칙에는 상대적 거리, 상대적 운동만 등장하기 때문에 절대운동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뉴턴은 절대공간 개념을 근거로 한 정적 이동과 운동학적 이동을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수용이 어리석거나 반박 가능한 귀결로 이끈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10.5. 분별불가능성(indiscernibility)으로부터의 논증

    라이프니츠는 분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PII)’를 옹호했다. PII는 두 개의 개체 ST가 갖고 있는 진정한 속성들이 완전하게 동일할 경우, 두 개체는 실제로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우주의 위치가 절대공간에서 변경된다고 해서 두 우주가 서로 다른 우주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주가 등속운동한다고 해서 운동 전후의 두 우주가 서로 다른 우주라고 할 수 없다. 뉴턴에 따르면 두 종류의 이동을 거친 우주는 서로 달라져야 하는데, 라이프니츠는 이동 전후의 우주가 분별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뉴턴과 달리 상대론의 입장을 취하면 실제로는 아무런 이동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별불가능성으로부터의 논증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뉴턴주의자들에 따르면 절대공간에서 위치가 달라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우주의 진정한 속성이 변하는 것이므로, 이동 전후의 우주가 서로 다른 우주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경험적으로 감지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분별불가능성의 원리가 감지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다.

 

10.6. 충분이유로부터의 논증

    라이프니츠는 충분이유의 원리(PSR), 즉 충분한 이유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원리를 옹호했다. 공간의 실재성을 가정하면, 공간은 절대적으로 균일하므로 공간상의 점들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왜 신이 물체들을 A가 아닌 B에 두었는지, 왜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 두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뉴턴식의 절대공간을 만들지 않고 오직 공간적으로 관련된 물체들만을 창조함으로써 이 난점을 피해갈 수 있다(정적 이동에 대한 반박). 마찬가지로, 신은 절대공간에서 우주를 정지시키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운동시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운동학적 이동에 대한 반박).

  

   그러나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충분이유원리로부터의 논증이 성공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충분이유원리에 의한 논증은 신이 우주의 위치 혹은 운동 상태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신의 무능함을 뜻했으므로, 당대의 신학적인 철학자들은 이러한 논증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한, 비신학적 관점에서도 충분이유원리로부터의 논증을 반박할 수 있었다. 위치의 이동이나 운동은 이전 시간의 위치 혹은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7. 방법론적 논증

    아마도 라이프니츠가 절대공간을 반박하기 위해 제시한 논증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방법론적 논증일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운동이 관측가능성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관측가능한 변화가 없다면 변화 자체가 없는 것이다. 실재적 변화란 관측자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검증가능성 원리(verification principle)’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검증가능성 원리의 지지자는 현재 거의 없다. 또한 과학자들은 관측되지 않은 개체들을 통해 관측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고 있다.

  

   만약 이론 PQ가 동일하게 현상을 설명하면서 P가 관측될 수 없는 개체 s를 포함한다면, 이론 P보다는 이론 Q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절대공간의 개념이 관측할 수 없는 개체 s라고 보았다. 관계론적 공간 개념만으로 충분히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절대공간에 대한 운동이 경험적 귀결을 갖지 못한다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반박했다. , 뉴턴은 동역학적 이동(dynamic shift)’이 탐지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주장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