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이 성공한 삶일까? 세속적인 여러 성공 기준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세상 속에서 스스로 돈을 벌 능력을 갖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라는 교육과정을 거치며 대학교를 졸업할 때 세상에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와 학벌이 중요한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학교와 학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보니 어떤 사람이 졸업한 학교(혹은 학벌)와 그 사람의 인성 및 업무 능력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과주의적 관점을 취하기로 했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든 상관없다.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잘 해내는지만을 본다.
그렇게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해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태권도 사범이 될 수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으며, 화가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하게 되는 데에는 많은 우연이 개입한다. 그리고 우연은 이내 그 사람의 운명이 된다. 나에게만 속하는 우연과 운명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나의 신조다. 내가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나의 아이들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물론 아이들은 나로부터 영향을 받겠지만 인간의 자식은 부모와는 다르기에 삶은 더 흥미로워진다.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이것을 일종의 의무 사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잘 알고 있으므로, 저출산율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가치 있는 많은 사회적 활동이 있으므로 나는 비혼주의자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비혼주의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아이를 키우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경험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집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한가로운 도시에 아내와 함께 집 한 채를 마련했다. 2012년부터 직장 생활을 했으니 12년 동안의 직장 생활로 얻은 작은 성취라 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살았다면 아파트 전셋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마련한, 지극히 서민적인 면적의 집이다.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10살, 6살, 6살. 아이들에게 아직도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갓난아기 시절에 비하면 훨씬 편하다. 나와 아내 모두 직장 생활 중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아내가 세상 속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설혹 그만두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나와 아내가 지금껏 갖춰 온 능력으로 사회 속에서 다시 자리 잡고 살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있다.
이렇듯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직장이 있으므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지금에 비해 더 이상 크게 바랄 것이 없으므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이런 자유로움은 내가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소속되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자리에 있었던 적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나는 그저 묵묵히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규칙들을 준수하며 보이지 않게 소소히 나에게 주어지는 한 줌의 자유를 누려왔다.
앞으로 내 삶이 크게 바뀔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나는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바대로 계속 살아가며 과학철학을 연구해 나갈 것이다. 그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그저 사람에게는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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