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라이헨바흐의 저작 [시간의 방향] 번역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늦어도 2025년 2월까지는 초벌 번역이 완료될 것이고, 2025년 6월까지 출판사에 제출할 경우 올해 안에 출판될 가능성도 있다. 그가 쓴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의 번역 원고는 2025년 1월 말까지 출판사에 보내기로 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까? 그런데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의미 있는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책이라는 형태로 출판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에만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 하긴, 어머니께서는 제발 베스트셀러가 될 책을 골라서 번역하라고 농담조로 말씀하시긴 한다.
나는 철학적 관심과 과학적 관심을 둘 다 갖고 있다. 이건 내가 생각할 때 우연한 일이라기보다는 나라는 개체의 독특한 특성인 것 같다. 사실 과학과 무관한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철학계 내에서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런 까닭에 철학과 내에서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는 사정이 그와 반대였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서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필수과목인 [과학철학통론]을 수강하긴 하였지만, 다수 과학사 전공자는 과학철학 수업 자체를 어려워했다. ‘과학철학은 어렵다’라는 게 과학사 전공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도 기본적인 과학사 강의를 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과학사와 관련된 자신의 세부 연구 분야 혹은 주제 하나쯤은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당연히 나의 입장이 ‘옳은 것’은 아니며, 단지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특히 나는 과학철학과 연계하여 계속 아인슈타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좀 더 연구의 내공이 쌓이면 과학사의 관점에서도 유의미한 아인슈타인 관련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실 중요한 건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해보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자기의 실력을 기르는 것이지, 실력을 갖춘 후에 성과를 낸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생각만 하고 있게 된다.
많은 것들은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힌다. 나는 며칠 전 내가 학창 시절 읽었던 작은 문고판 책을 보면서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플라톤이 쓴 그 작은 책은 우리나라의 한 문학자가 번역한 것이었는데, 더 이상 그 책은 출판되지 않고 있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다. 아마 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세상에 나타났지만 이내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꼭 두려울 필요는 없다. 아마도 나는 적어도 나의 아이들에게는 오래 기억되고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려움 없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 된다.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면 크게 두려워할 일도 없다.
어쨌든, 최근 나는 종종 내가 일종의 ‘역사의 도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철학을 전공하면서 과학사 입문서를 쓸 사람은 계속 나와야 하고, 당연히 과학철학 입문서를 번역하는 사람이 아닌 직접 쓰는 과학철학 연구자가 계속 나와야 한다. 과학사 전공자가 쓴 과학사 입문서는 다수 있지만 과학철학 전공자가 쓴 과학철학 입문서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기는 하다. 별로 없으면, 쓰면 되지 않는가. 그와 같은 ‘쓰기’에 나도 동참하면 되지 않는가. 텍스트가 축적되어 텍스트의 전통이 된다. 한국의 과학철학 텍스트 전통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깊지 않으면 깊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단순하게 생각하자.
사는 거 별거 없다. 그냥 너무 재고 고민하지 말고 제 할 일 열심히 하다가 가면 된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본분에 맞는 자기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내가 역사의 도구가 될 것 같으면, 확실하게 그 역할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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