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성실한 독자이자 작가

강형구 2022. 6. 7. 11:27

   내가 나를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퍽 중요하다. 나는 나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독창적이고 화려한 사상을 펼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점에서 나는 오히려 내가 역사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잘 찾아볼 수 없지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상을 역사적 문헌들 속에서 발굴해내는 게 나의 일이다. 내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역사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고 상식의 옹호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철학자’라는 명칭은 좀 부담스럽다. 나는 과학철학을 좋아해서 계속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마추어 과학철학 연구자’, ‘과학철학 애호가’라는 명칭이 내게 더 잘 어울린다. 나에게 박사학위는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에게 주는 메달과도 같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끝까지 달렸으니 그 정성이 기특해서 주는 상이다. 결코 내가 과학철학을 잘해서 주는 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박사학위란 시험 성적이 95점 이상인 사람에게 주는 메달은 아니다.

 

   여러 상황에서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사실 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과분한 일이었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잘한 학생도 아니었다. 약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던 내가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 석사,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 역시 운이 좋아서였다.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특이하게 경쟁률이 낮았거나, 면접을 본 교수님께서 예상외로 나를 잘 봐주셔서 합격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뭔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제법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나는 전혀 똑똑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내가 성실한 독자이자 성실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똑똑하지 않아도 성실한 독자는 될 수 있다. 그냥 부지런히 글을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성실한 작가이다. 이때 작가의 의미에는 ‘번역을 하는 사람’과 ‘기고문, 논문, 책을 쓰는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 성실하다고 해서 유능하거나 인기 있는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재능이 변변찮아도, 인기가 별로 없어도 성실한 작가는 될 수 있다. 과학철학을 계속 끝까지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 그다지 똑똑하거나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과학과 철학에 대한 글을 읽고 더 나아가 계속 번역 및 집필 작업을 하는 작가.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작가인 나는 철저히 고객 중심으로 사고한다. A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하면 A에 관련된 글을 쓰고, B 책을 번역해달라고 하면 B 책을 번역하며, C로 용어를 바꾸자고 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이상 C로 용어를 바꾸며, D 일을 마감일이라고 하면 D 일까지 원고를 제출한다. 작가인 나는 기업으로 따지면 중소기업(혹은 수공업자?)이다. 브랜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매출액은 아주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업하지 않고 살아남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한다. 스스로는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지인들에게 부탁한다. 나를 ‘과학철학자’라고 부르기보다는 ‘과학철학 역사가’ 혹은 ‘아마추어 과학철학 연구자’라고 불러달라. 그리고 가급적이면 나를 성실한 과학책 독자이자 과학 작가(혹은 저술가)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똑똑함, 지적 권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좋은 과학책 또는 철학책을 빌리며 감동하고, 나 스스로 번역하면서 공부하고, 나같은 사람이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논문을 쓰는, 성실한 독자이자 작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