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으며

강형구 2022. 6. 1. 11:37

   나는 올해 5월 말까지 박사학위 논문 초고를 어느 정도 정리했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논문 수정 보완 작업에 들어간다. 초기에 나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등장 이후 이 이론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다. 현대 과학철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논리경험주의 철학 역시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면서 점차 형성되었다. 그런데 정작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분석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는 문헌들을 찾기 힘들었다. 브리지먼(Bridgman)의 ‘조작주의’를 이러한 분석이라 할 수는 없었다. 브리지먼은 미국 출신의 물리학자였고 그를 논리경험주의 철학의 중심인물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세 학자인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은 모두 상대성 이론의 철학적 의의를 진지하게 분석한 철학자들이었다. 슐리크의 『현대 물리학의 시간과 공간』(1917년), 카르납의 『공간』(1921년),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 3부작(『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1920년),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1924년),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년))이 이들의 철학적 분석을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 철학이 논리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상대성 이론 분석이다. 라이헨바흐가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일반 상대성 이론 세미나(1919년 경)에 참여한 이후, 두 사람은 평생 친분을 유지했다. 심지어 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슐리크와 아인슈타인의 사이가 서먹해진 이후에도 그러했다.

 

   그런데 라이헨바흐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 단순히 라이헨바흐가 아인슈타인을 추종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라이헨바흐는 철학을 떠나 물리학을 하지 않았을까?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철학자와 물리학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와 함께 라이헨바흐를 베를린 대학에 임용시켰을까? 아인슈타인에게 과학철학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라이헨바흐와 아인슈타인은 어떤 점에서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물음들을 배경으로 삼아 라이헨바흐와 아인슈타인의 여러 저술을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이 물음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대략 20년 정도다. 내가 찾은 답이 얼마나 유의미할지, 얼마나 학술적인 가치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마감’이다. 박사과정 졸업에도 기한이 있어, 이제 내게는 2년이라는 시간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감’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논문 원고를 다듬는다. 오래도록 열심히 만든 조각상을 상세하게 다듬는다는 느낌으로 작업한다. 나의 철학적 재능은 무척 부족한 편이라 논문의 전체적인 수준을 확실하게 향상시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육아휴직이 끝나는 올해 말까지는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육아와 논문 수정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20세기 전반기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으로 나의 연구 분야가 좁혀지는 것 같다. 이 분야의 연구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연구 가치는 있다고 믿는다. 연구할 필요가 있는 학자들은 아주 많다. 상대성 이론과 관련하여, 푸앵카레, 마흐, 헤르츠, 아인슈타인, 플랑크, 라우에,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 바일, 에딩턴, 파울리.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보른,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폰 노이만, 라이헨바흐. 그러니까 이 좁은 분야에서도 더 세분화해서 연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만을 주제로 삼아도 평생 연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연구의 자유는 실로 무한하다. 이러한 상황이 좌절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자유를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