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내 성향에 맞는 삶?

강형구 2022. 5. 27. 15:38

   중학생 시절 내가 애지중지했던 물품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였다. 나는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운동은 좋아했지만, 격렬하게 서로 경쟁하고 승패를 가리는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야구, 축구, 농구 등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또한 나는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책상 물림형 인간이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좀 더 실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굳이 철학과로 진학하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무난한 학과(서양사학과나 국사학과)에 진학했다가 적당히 괜찮은 직장을 잡아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 소심했던 것 같다. 서울대학교까지 들어가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이를 악물고 끝까지 기를 쓰면서 아득바득 철학을 공부해서 대학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아쉽다. 대학 근처에 숙소를 얻어 낮이나 밤이나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철학 공부를 했었어야 했다.

 

   물론 취직을 준비하고 직장 생활을 해 본 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이 세상과 인생 경험으로서는 좋았지만, 만약 내가 취직을 하지 않고 계속 연구에만 매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더라도 해외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연구를 하고, 국내에 돌아와서 연구교수로 연구를 계속 했더라면, 지금쯤 국내 어느 곳에서건 자리를 잡고 학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 이렇게 후회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이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둘 생각이다. 먹고 사는 문제야 아이들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나는 괜찮은 직장으로 취직을 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무난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은 그냥 생긴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약간 특이한 면이 있다면, 그 특이한 면을 부정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을 연구하면서 살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했으므로, 도중에 취직하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잘 알아주지 않는 게 뭐 어떤가? 어쨌든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에,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10년 동안의 직장 생활에 쉼표를 찍고 육아휴직을 하는 요즘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에는 자유롭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술논문을 쓰고, 학위논문을 써서 고치는 이 시간이 나에게 편안함과 행복을 준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게 아닐까?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과학철학 연구를 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단지 육아휴직 기간이라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진지하게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서 그 소리를 듣게 되었기 때문일까?

 

   내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계속 공부하며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학술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나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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