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이야기

정인경 작가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를 읽고

강형구 2021. 3. 19. 17:43

   얼마 전 정인경 작가의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를 읽었고, 방금 막 그가 쓴 [뉴턴의 무정한 세계]를 읽었다. 둘 다 좋은 책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뉴턴의 무정한 세계]가 더 마음에 든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과학 이야기가 새로웠고 흥미로웠으며 퍽이나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에서의 내용들은, 내가 과학사 과학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잘 모르는 동아시아 과학사와 한국 과학사의 시각에서 쓰인 글이 참신하게 다가왔고 사뭇 큰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싶은 것은 작가가 온전한 자신의 언어로 과학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우리말 문장들의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힌다. 나의 기준으로 볼 때 (물론 나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과학의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의 내용에 대한 서술이 정확하면서도 이를 자기 고유의 언어로 풀어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서의 내용들은 이 책의 내용이나 저 책의 내용이 다 비슷한데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분명히 내용을 이해하고 충분히 소화시킨 후 이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소화시켜 지금까지 사회를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194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과학사를 접목시켜서 어떤 종류의 새로운 과학사적 논의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 생각에 우리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어떻게 과학을 공부하고 이해하며 습득하는지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과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들에게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관한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과학사 서술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서양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지향점에 대해서 짧게 말하고자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서양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서양과학을 충분히 습득했고, 과학기술적으로 볼 때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서양과학의 역사와 사상을 문화적으로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더 이상 ‘천재’ 아인슈타인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게 된 문맥을 자세히 살피면 아인슈타인의 선구자들이 누구였고 이들의 업적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 아인슈타인 자신의 글들 및 논문들과 더불어 그가 활동했던 배경들을 살피면 아인슈타인이 무슨 문제의식을 가졌고 어떤 주장을 했는지가 자세하게 파악된다. 만약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국적을 바꿀 수 없다면, 그의 생각들을 소화시켜 우리말과 우리글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미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의 역사와 철학을 상세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푸앵카레가 무슨 생각을 했고, 마흐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이들로부터 아인슈타인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등등을 시시콜콜 다 찾아보고 파악한다. 아인슈타인이 취리히 공대 재직 시절 어떤 방식으로 연구했는지를 확인한다. 이 작업은 이미 상당부분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위르겐 렌, 미셸 얀센 등)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상세하게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을 파악한 다음, 제대로 소화를 시켜서 우리의 언어로 상대성 이론의 역사와 철학을 기술한다. 그러면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이 갖는 역사적이고 철학적 의미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론들이 서양에서 나온 지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어렵다’고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언어로 활발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그것이 온전히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